[투데이안 객원논설위원]최근 청천벽력과 같이 불어 닥친 아이티의 강진은 판도라의 상자인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 속에서 신음하고 아파하는 아이티의 국민들..그리고 그 전장과 같은 폐허 속에서 인종과 국경을 넘어 피어나는 희망의 꽃, 국제사회의 나눔과 인류애..이 모든 것이 열린 판도라 상자의 조화인가?

아이티 지진으로 인한 대참사로 세계 각국이 앞 다퉈 구호와 지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고, 이에 힘입어 절망과 좌절에 빠져있던 아이티 국민들도 일상을 되찾아가면서 재기를 위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정부 차원에서 1천만 달러 지원과 구호 팀 파견 등으로 아이티를 지원하고 있고, 민간 차원에서도 의료팀, 구호 팀 등의 파견과 모금 및 금품지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보내준 한줄기 희망의 빛은 동굴과 같은 아이티의 암흑을 한 번에 밝혀주고 있다. 지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한국이 보냈던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아이티에도 재현되면서 지구촌 재난현장에 달려가는 우리의 협력외교가 훈훈함을 전해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역할, 즉 국경을 초월한 기부와 나눔이 정작 우리 사회 속에서 얼마나 기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그 현주소가 새삼 궁금해진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우리 한국사회의 기부문화는 아직 발달적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4위인 강국으로 성장했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그 위상에 걸 맞는 기부문화의 발달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있는 이른바 ‘기부문화 지체’를 경험하고 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은 1인당 소득 중 평균 0.8%를 기부하고 있을 뿐이고 정기적인 기부자도 전체 기부자의 70%를 상회하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에 비해 한국의 정기 기부자는 전체 기부자의 약 25%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기부문화의 허약한 체질은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를 제외한 일반적 기부는 상대적으로 미약할 뿐만 아니라 기부행위도 연말연시에 주로 집중되며 ARS 기부를 가장 선호하는 기부형태로 꼽고 있다.

이는 지속적인 ‘생활 속 기부’보다는 동정심에 기초한 ‘일회성 기부’가 많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기부의 생활화가 아직 우리사회의 ‘기부문화 코드’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훈훈한 정과 사랑이 넘치는 나눔과 기부문화의 확산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기부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부의 불평등과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를 토대로 사회통합과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부연하면 기부는 국가나 정부가 이루어 낼 수 없는 빈 틈새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보완해 나가는 공동체 지향적 행위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부문화의 발전은 그 나라의 문화적인 수준과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유효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부문화의 성숙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과감히 포기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사랑’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사회의 기부문화는 그 이전에 비해 많이 발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선진국형 기부형태인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시스템, 즉 임직원의 기부행위를 촉진하기 위해 기업이 임직원과 함께 사회공헌활동기금을 모으는 새로운 변화가 확대되고 있고 기업매출액의 1만분의 1을 납부하는 ‘만분클럽’(환경재단)이나, 월급, 결혼비용, 연금, 유산의 1%를 기부금으로 내는 ‘1% 나눔운동’(아름다운 재단) 등 자선모금활동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역동적인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많이 과제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규제지향적 법과 사회 및 종교단체에 기부한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세제 해택을 확대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부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른바 ‘생활기부’에 대한 인식전환과 확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부와 봉사는 반복적인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 체득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재화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부모가 먼저 기부에 솔선수범하는 역할모델로 자녀에게 다가서야 하고 학교에서는 제도적으로 기부에 대한 교육을 충실히 해야 한다.

결국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실천행위인 기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힘겨운 노력이 없이는 하나의 성숙한 문화코드로서 맛 볼 수 없는 ‘신포도’에 불과할 뿐이다.

성숙한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해 이제는 우리 모두가 받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먼저 주기를 실천하는 열린 가슴이 요구되는 때이다./최낙관 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저작권자 © 투데이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