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이야기구조를 압도하는, 걸출한 시각 공간과 리듬감 있는 액션의 설계

조 현 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 /톡톡튀는  객원논설위원


우리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액션어드벤쳐라 불러왔다. 주인공은 낯설고 광활한 환경 속에 홀로 뛰어들어 있고, 온갖 재해와 악의에 기초한 역경에 부딪쳐 그에 싸워 나가게 되어 있다. 또한 카메라가 그러한 배경의 이국적이면서 장대한 풍광을 훑어대는 사이, 우리의 주인공의 육체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윤곽을 그려내며 아슬아슬한 제한시간에 예외없이 맞추어가며 하나씩 하나씩 그 재해와 역경을 분쇄해가는 통렬함을 발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과 그의 적 사이에는 선과 악의 척도에 따른 선명한 이분법이 적용되어 있고, 대개의 경우 그 선의 입장을 차지하는 영광은, 이러한 공산품의 제작 주체에 대해 국적과 인종 혹은 계급이 일치하는 집단에게로 돌려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바타』의 경우, 액션어드벤쳐로서의 기술적 감각적 미덕을 고루 갖추면서도 이데올로기적 건전성을 발휘하는 드문 사례로 남게 될 것같다. 사실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눈이 부실 정도이다. 모든 장면에서 거리와 깊이감을 살려낸 입체화의 성공에 따른 사실감의 위세를 등에 업고, 거의 백지로 설정된 시공간적인 빈 캔버스에 온갖 기묘한 상상을 애니매이션에 준하는 자유로움으로 거침없이 현실화하였다. 그리하여 ‘판도라’라고 하는 어떤 외계행성에는 ‘영혼의 나무’라 불리는 거대한 토템이 지상에 건재해 있고, 공중에는 육중한 산들이 구름 섞인 허공에 매달려 있어, 그 위용과 아름다움이 도를 넘을 정도이다. 또한 이 행성에는 ‘나비’족이라 하는 원주민들과 특이한 형상의 괴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규모와 형태는 인간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것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그 신선함과 진기함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여기에 나비족의 형상으로 설계되어 이 땅에 침투하도록 되어 있는 ‘대리인간’ 아바타가 주인공으로 설정됨으로써, 영화는 이 완전한 허구의 세계 속에 인간관객들을 푹 빠져들게 하는 매개장치를 견고하게 확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보는 이의 정서와 인지는 어느새 이 희한한 세계의 존재들에 이입되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들과 함께 뛰게 되어버린다. 더욱이 이들이 탐욕스런 지구 자본가들의 금적전 욕구에 기초한 물리적 침공의 희생자들로 규정됨에 따라, 관객의 이 모호한 대리 체험은 곧장 동정, 분노, 저항, 그리고 슬픔의 정서 싸이클을 따라 발전하면서, 묘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헐리웃 거대예산의 상업영화들이 지녀온 ‘제국주의 유전인자’에 비교해 볼 때,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첨단기계문명과 막대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서구의 자본세력이 야만을 일삼는 미개부족을 개화 인도하는 정당한 질서 부여자로 묘사되는 대신, 일방적 탐욕에 기초한 폭력의 행사자로 지목되고, 우리의 아바타가 나름대로 선량하고 정당한 원주민들과 함께 그들의 착취와 폭력에 대한 저항을 성공적으로 전개하게 되는 것을, 서구의 거대 상업영화의 형식 속에서 체험해보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아바타』는 서구 제국주의의 약소국 착취라는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은유’나 그러한 압제에 대한 ‘선동’을 시도하는 일 따위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문제작’은 결코 아니다. 지구발 거대자본에 대항하는 피압제자의 저항이라는 구도는, 그저 이국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숨가쁜 모험과 화려한 액션의 동선을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 내러티브 상의 기초를 제공할 뿐이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출산비용을 요구했던 이 값비싼 공산품 또한, 투자자들의 이익에 충실히 봉사해야 한다고 하는 숙명을 본래부터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야기 구조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평이하고 친근하며, 공간적 배경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세련되게 구축되어 전시되고, 인물과 상황들 사이에서의 갈등은 매우 이해하기 쉽게 전개되다가 무척도 예측가능하게 해소되어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때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기이한 시각적 공간 속에 배치된 인물들과 주변 사물들 사이에서 정교하고 리듬감 있게 설계된 액션은, 16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그 어떤 지루함도 느낄 틈을 주지 않고 있다. 『매트릭스』, 『늑대와의 춤을』, 『원령공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걸출한 선배들의 부분들을 욕심스fp 응축하고 있는 이 풍만한 신생아는 결국 친근하고도 재미있는 혼성모방의 문화상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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