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 교육․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매김

2014년 갑오년 청마의 해가 밝았다. 힘차고 강인한 청마의 기운이 뻗어가는 2014년 새해, 익산에서 말(馬)을 의미하는 지명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마동(馬洞)이다.

 
마동(馬洞)은 이곳이 예전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이어서 말을 이용하는 행인들이 여기에서 말에 물을 먹이며 쉬어 갔다 해서 마동(馬洞)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또 말잠자리, 말벌에서와 같이 ‘말’이란 뜻이 크다, 넓다,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큰 마을’을 의미하는 ‘말동네’라고 한 것을 한자음으로 표기하며 마동(馬洞)이 되었다고도 한다.

익산시 마동(馬洞)은 옛 이리시의 중심지역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며 마동정(馬洞町)이라 한 것을 해방 이후 마동(馬洞)으로 변경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마동에는 옛 이리농림이었던 전북대 익산캠퍼스와 옛 이리보통학교였던 이리초교, 흔히 농고방죽이라 불렀던 시녀제(연꽃방죽) 터를 비롯해 일제시기의 가옥과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다.

옛 이리시가 발전하며 성장해 온 마동에도 그 연혁을 알 수 있는 마을 이름들이 아직 남아있다.

 
높은매라 불리는 고봉리(高峯里)는 지금의 익산시립마동도서관 뒤편의 고봉산 정상에 위치한 마을을 말한다. 순수 우리말로 높은매라 부르던 것을 한자음 표기로 바꾸며 고봉리라 했다고 한다.

또 지금의 고래등오거리 인근 지역은 모새뜸, 사천리(沙川里)로 불리는데 과거 물이 차는 지역이었지만 토사가 내려와 둔덕이 형성되면서 마을이 들어서게 되어 이름 붙여졌다.

신설지는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통의 중심인 옛 이리 지역으로 피난해 와서 살게되면서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흔히 사람들이 농고방죽이라 불렀던 시녀제(侍女堤)는 물이 하도 맑아서 하늘에서 옥황상제의 시녀가 내려와 목욕하였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전북대 익산캠퍼스 정문 일대 지역으로 지금은 그 흔적을 짐작만 할 뿐이다.

 
마동에는 익산교육지원청을 비롯해 마한교육문화회관, 전북대 익산캠퍼스, 이리남중, 지원중, 이리초교 등 익산의 중요 교육기관이 밀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솜리문화예술회관과 시립도서관 등 지식과 정서를 함양하는 문화생활의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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