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건 아스팔트를 뚫고 돋아난 한 포기의 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꿈꾸었던 사회가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이상국임을 압니다."
이는 뇌성마비 1급 박연복 장애시인 이 발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우리를 향해 던진 독백이다.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넘어서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지만 높은 현실의 벽으로 인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소리 없는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장애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다름의 접근’이 아직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너무도 멀리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그렇다면 차이를 인정하는 ‘다름의 접근’은 불가능한 것인가? 물론 장애에 대한 차별은 강제적 규범이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어느 정도 그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강제적 규범이나 제도적 장치가 ‘신뢰’라는 가치위에 놓이게 될 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를 구속하는 강제일 뿐이다.
결국 차이를 인정하는 ‘다름의 접근’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상호존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즉 우리사회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진정성에 기초한 폭 넓은 이해가 정착될 때, 장애에 대한 편견의 아성은 무너지게 되고 장애인들을 세상 속으로 나오게 만드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현실의 삶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다. 사람은 믿음과 기대를 먹고 성장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만든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장애시인 박연복의 절규처럼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공허한 근본적인 이유는 한편으로 장애를 차이로 인정하며 그들에게 믿음과 격려를 주는 피그말리온이 우리 사회에 적은 까닭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 내 스스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으로 무장한 장애인 또한 적기 때문이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신뢰의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장애인에게 관심과 지지 그리고 믿음의 손길을 먼저 내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될 때 ‘아스팔트를 뚫고 돋아난 한 포기의 풀’이 강한 자기 확신으로 꽃을 피우고 이내 홀씨가 되어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동안 무기력했던 장애인들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기대와 존중이 커나갈 때 자기실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그 만큼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다름의 접근’은 비로소 가능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믿음과 희망을 주는 선순환 구조가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최낙관 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