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이야기>전주에는 전주천과 삼천천이 있다
[투데이안]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에 한 여인이 덜컹대는 문을 열고 나와 마루에 선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질하여 고무줄로 동여매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는 모습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을 느끼게 한다.
지대가 높아 물이 귀한 때라 남들이 깨기 전에 서둘러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받는다. 간혹 연탄불이라도 꺼질 때면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번개탄으로 불을 지펴보지만 이마저도 어려우면 잔가지로 불을 피워 냄비밥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잠시 굽은 허리를 펴고 여명이 밝아오는 전주천을 바라보는 아낙네의 모습이 처연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남편과 아이들의 손에 도시락을 들려 보내고 나면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처마에 앉아 늦은 아침을 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집안 정리를 대충 하고 서둘러 빨래를 준비한다. 기름때 낀 작업복과 아이들 옷가지를 챙겨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전주천으로 향한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물이 귀한 시절에 대부분 사람들은 하천에 있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해야 했다.
전주천은 오랫동안 서민들이 모여 빨래를 하고, 양잿물에 넣고 삶기도 하고, 천변 풀밭에 널어 말려가는 곳으로 자리 잡혀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 다가교를 지날 때면 그때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다가교 아래에 있던 빨래터는 형체도 없어지고 지금은 그 모양만 꾸며 썰렁하게 남아 있다. 전주천을 생각하면 떠오를 좋은 추억거리를 복원하여 하나의 역사로 수집하고 보존하면 좋겠다.
해가 지고 아이들마저 잠자리에 들면 온종일 종종거리던 걸음을 멈추고 그제야 머리에 얹은 수건을 내려놓는다. 마루에 걸터앉은 아낙네는 언제일지 모르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망연한 모습으로 전주천을 따라 흐르는 불빛들을 쫓고 있다.
4남매를 키우느라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지쳐 쉬고 싶을 법도 한데 완산교를 건너는 지아비를 찾는 맥없는 눈빛이 슬퍼 보인다.
가로등마저 잠자리에 들 무렵이 되어서야 멀리 전주천을 건너는 자전거의 흔들리는 불빛을 찾고선 오늘 하루도 힘겹게 버텨냈을 남편에 대한 짠한 마음에 아낙은 서운함보다 안쓰러움이 앞선다.
남편의 늦은 저녁상을 차려주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그제야 노동자 아내의 고단한 하루는 끝이 난다. 어머니의 삶은 그렇게 전주천을 맴돌며 힘겹게 흘러갔다.
전주에는 전주천과 삼천천이 있다. 한동안 전주천만 인식하며 지내다 평화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삼천천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천천은 전주천과 다른 면이 있다. 전주천은 구도심을 가로지르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지만 삼천천은 천변을 따라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주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삼천천은 구이에서부터 이편한세상아파트까지 도보길과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삼천천을 달렸다. 미리 준비한 물병과 과자, 과일을 짐받이에 싣고 구이로 향한다.
도중에 신평교 다리 중간에 서서 말없이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기도 하고, 벤치를 만나면 반가움에 자전거를 멈추고 함께 과일과 과자를 나눠 먹기도 하고, 한적한 길에선 자전거에서 내려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솔솔 했다.
아내와는 도보길을 걸었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아파트를 나와 구이 쪽을 향해 걷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맛이 일품이다. 해가 저물어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새들의 멋진 하모니에 귀도 호강을 한다.
구이 쪽에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드물어 손을 잡고 걷기 좋다. 아내도 연애시절이 떠오르는지 싫은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밤이 깊어지면서 낮에 보였던 물길은 보이지 않고 흐르는 물소리만 더 맑고 선명하게 들린다.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멀리 아파트 숲이 가까워지면서 한적한 시골에서 화려한 도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듯 신비롭다. 삼천천은 많은 시민들의 체력단련실이며, 휴식처이며, 소통의 장소이다.
전주천은 상관에서 시작하여 한옥마을을 지난다. 남천교에서 바라보는 석양과 억새는 전주에서 볼 수 있는 멋진 광경 중의 하나이다. 팔각지붕의 한옥 청연류에 서면 전주천을 따라 흐르는 바람결을 온몸으로 안으며 자연에 스며드는 나를 느낄 수 있어 좋다.
한벽루 옆 승암사는 젊은 청춘을 바친 곳이기에 가슴 한편이 아리기도 하고, 다시 그런 열정을 쏟아부을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가 있는 곳이다. 남부시장을 거쳐 전주의 전통적인 구도심인 전동, 다가동, 태평동, 진북동을 따라 내려오는 전주천은 전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시민이 사랑하는 전주천, 시민이 자주 찾는 전주천,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전주천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주에서 1년 6개월 동안 생활을 하였었다. 승진을 하여 강릉에 갔다가 바로 고향에 오지 못하고 청주를 거쳐 전주에 왔었다. 오랜 기간 타지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찾던 곳이 청주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무심천이다.
하천 이름이 내 마음과 같아서인지 자주 걸으며 위로받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무심천도 여느 하천과 같이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운동과 산책을 하기도 하고, 공연이나 행사가 수시로 열려 항상 시민들로 붐비곤 한다.
무심천에는 다른 하천에 없는 특이한 점이 있다. 천변을 따라 음향시설이 되어 있어 일정한 시간이 되면 방송을 진행하여 시정 소식과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노래를 듣는 것도 즐거웠지만 세금 납부, 주요 행사, 교통 통제와 같이 시민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매일 전해주니 미처 모르거나 놓쳐서 불편하거나 난감할 일들을 미리 방지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시도라고 생각했었다.
남원에는 요천이 흐르고 있다. 요천에는 생태습지공원이 있어 취사와 숙박도 가능하다. 물놀이시설도 설치하여 한여름 시민들의 휴식과 놀이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고, 물줄기를 막아 오리배도 탈 수 있다.
최근에는 요천이 ‘지역맞춤형 통합하천사업’에 선정되어 치수, 생태, 문화, 관광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요천시민공원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이렇듯 하천은 지역의 시가지를 관통하며 도시의 역사와 문화, 관광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도심과 자연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천과 삼천천에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한 도시에 두 개의 하천이 균형을 이루고 흐르는 곳이 많지 않다. 전주천과 삼천천은 도시의 중심에서 만나 절경 좋기로 유명한 만경강으로 흐른다.
천혜의 조건을 이용하여 자전거 도시를 조성하면 어떨까?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도시 전체를 친환경 화하면 좋겠다. 먼저 전주천과 삼천천에 자전거 도로를 잘 조성하여 연결하고, 성별, 연령 제한 없이 모든 시민들이 라이딩을 즐기고 싶도록 만들어 보자.
학생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매년 전국자전거대회를 개최하여 자전거가 주는 건강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자. 대회는 속도가 아닌 질서를 잘 지키며 안전하게 타는 라이더가 우승을 할 수 있도록 규정 해보자.
전주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보고 싶도록 콘텐츠를 개발해서 곳곳에 배치하자.
바람일 수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차도 옆에 자전거도로 차선이 개설하도록 하여 전주시 어디든 자전거로 통행이 가능하도록 해보자. 자동차세는 많이 걷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자.
창의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거나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생각과 방식을 바꾸고 개선하여 새롭게 적용해 보는 것이 아닐까? 10차선 백제로 위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는 꿈을 꾸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