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야기>고단함이 아닌 재밌는 남부시장을 그리다
[투데이안] 날이 새기 시작하면 서둘러 나설 채비를 한다. 조금은 두툼한 옷을 입고 장바구니 캐리어를 챙겨 출발한다. 막 해가 뜰 무렵 도착하였음에도 이미 장이 서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남부시장 천변에는 새벽부터 동틀 무렵까지 도깨비시장이 열렸다가 사라진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산지에서 바로 가져온 신선한 농·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통 재래시장의 정겨움을 느껴보고 싶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늦으면 좋은 물건을 놓칠 것 같은 조급함에 급히 주차하고 개울을 건너 장터로 들어선다. 막 캐논 냉이, 유채, 파, 봄동과 같은 신선한 야채들이 한 움큼씩 줄을 지어 손을 잡아끈다. 매주 주말이면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올라왔던 제철 음식들이 여기에 있는 재료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자식을 위해 바빴을 발길이 애달프다. 아내는 내일 아침에 된장국에 끓여 먹자며 냉이를 샀다.
채소 구역을 벗어나 고등어, 전복, 명태, 생합, 새우, 낙지가 있는 수산물 코너로 발길을 옮겼다. 각종 어패류가 신선함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팔딱거리고 꿈틀대며 힘자랑을 하고 있다. 왜 이리 싱싱하냐며 칭찬 반 너스레를 떠는 손님이 전복을 연신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를 눈치챈 주인이 어제 따온 것이라며 싸게 드릴 테니 사다가 남편 몸보신 시키라고 꼬드긴다. 흥정이 몇 차례 오가고 손님의 손엔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아내도 묵은지에 지져 먹으면 맛있겠다고 고등어 한 손을 구입했다.
채소와 생선을 양손에 들고 과일 좌판에 들어서니 아내의 시선이 바쁘다. 사과의 가격과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왜 이리 싸냐며 연신 감탄을 한다. 이미 구입한 물건들이 캐리어에 가득하다 보니 선뜻 과일을 사지 못하고 들었다 놨다 하더니 그냥 가자고 한다.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사과가 정말 싸다느니 모양은 좀 떨어져도 맛은 더 좋다느니 아쉬움이 많은 듯했다. 이대로 집에 가면 안 될 것 같아 돌아가서 사과를 사자고 해본다. 아내는 지금 산 것도 많아서 돈을 너무 많이 썼으니 다음에 사자고 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농사지은 분이 직접 가지고 나온 물건이라 로컬푸드 보다도 훨씬 싼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무조건 사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얼른 아내의 손을 잡고 사과 좌판으로 향했다. 나의 권유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과 한 상자를 사서 끙끙대며 들고 오는 아내의 얼굴이 무척 환해졌다.
한 시간 넘게 장터를 구경하다 보니 출출해졌다. 남부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순대국밥, 팥죽, 콩나물국밥, 국수집들이 이미 문을 열고 손님을 반겼다. 이 시간에 벌써 영업 준비를 다 했으면 도대체 몇 시에 나왔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직장 생활할 때 술 먹은 날이면 해장을 하러 다녔던 원조 콩나물국밥집으로 갔다. 전주 콩나물국밥에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수란, 김, 오징어가 있어 맛이 일품이다. 몇 해 전 프랜차이즈 콩나물국밥집을 운영했었다. 사회생활도 해본 적이 없고 장사 경험도 전혀 없는 초짜가 식당을 시작했으니 그 고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배우고 3년 만에 그만두었다. 말로만 듣던 서민들의 삶을 온몸으로 체감하였다. 가게를 운영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영세 상인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국밥을 맛있게 먹고 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옷가게며 쌀가게, 생선가게, 채소가게, 고깃집, 건어물가게, 방앗간들이 문을 여느라 부산했다. 시장에 계시는 분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 같아 애잔했다. 숨은 보물을 찾듯 재래시장의 구경거리를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제주의 민속오일시장이 떠올랐다.
제주에는 동문시장, 올레시장과 같은 상설 시장도 있지만 5일마다 여는 오일장도 지역별로 자리 잡고 있다. 제주생활을 하면서 오일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 거주지가 제주시여서 주로 민속오일시장과 동문시장에 다녔다. 민속시장은 오일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여행객의 방문도 많아서 제주의 대표 오일장이다. 제주에서 생활하며 채소와 과일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구매가 아닌 시장에서 대부분 구입했다. 상설도 아니고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닌데 굳이 오일장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까. 오일장에서는 현지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볼 수 있고, 제철 물건들이 계절별로 바뀌어 나오고, 규모도 매우 넓어서 한 바퀴를 돌며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동문시장의 경우 제주에서 나오는 온갖 수산물들을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기도 하고, 저녁 무렵 열리는 청년몰의 가판에서 열리는 각종 요리쇼를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제주 재래시장의 특이한 점은 시장하면 떠오르는 올드한 느낌이 아닌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생기 발랄하고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전주에는 재래시장으로 중앙시장, 동부시장, 모래내시장, 서부시장, 남부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에는 대부분 청년몰이 운영되고 있다. 처음 창업을 하는 청년들의 열악한 자본과 미 경험자로서의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해 창업을 하여 운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실험실과도 같은 공간이다. 남부시장 2층에도 청년몰이 있으나 규모과 종류도 적고 위치마저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찾는 이도 적어 썰렁하고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판매의 발달로 많은 상인들이 떠나갔고 현재 남아 있는 상인들도 여건이 좋지 않다.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눈에 띄게 나아지거나 활기를 찾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단순히 청년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대도 지났다. 소상공인들의 하루하루는 온몸과 정성을 쏟아부어야 하는 치열하고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다. 시장은 살아있음을 잘 느낄 수 있는 생동감 있고 활기 넘치는 곳이지만, 한 편으론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삶의 최전방과도 같은 곳이기도 하다. 대형마트는 마트대로의 장점이 있고, 온라인 쇼핑몰은 쇼핑몰 나름의 장점이 있다. 대형마트의 장점과 온라인 쇼핑몰의 장점을 간과하고 재래시장이니 찾아주어야 하고, 무조건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인식만으로는 난관을 타개하기 어렵다. 시장의 모습을 인정하고 다른 영역과의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재래시장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재래시장과 청년몰을 활성화하여 영세 상인들과 창업 청년들이 안착을 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해답은 제주 재래시장과 남부시장의 도깨비시장에 있다. 재래시장을 살리겠다고 단순히 외장만 바꾸는 투자보다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만 구입하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을 알 수 있도록 특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의 경동시장하면 약재가 떠오르듯이 각 재래시장의 특색에 맞는 상품들을 찾아 집적화하여야 한다. 또한 시장은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 놀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많이 개발하여 시장에 가면 피곤하지 않고 심심하지 않고 재밌다는 이미지를 형성하여야 한다. 남부시장 인근에는 한옥마을과 서학예술마을이 있다. 한옥의 모습이 남부시장에 녹아들어야 하고, 예술인이 시장에 와서 놀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서야 하고 꼭 해야만 한다. 그래서 시장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단함의 상징이 아닌 놀러 가고 싶은 남부시장을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