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젊음을 보냈던 덕진동에서 미래를 보다
[투데이안] 한 달 넘게 새벽에 깨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예순을 넘은 나이에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문제 인식과 대안 제시는 나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번만은 아닌 것 같다. 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걸까? 원인을 잘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시작이 잘못되었는지 답을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이 힘들거나 고민이 있거나 삶이 지칠 때 찾는 곳이 있다. 청춘을 하얗게 불살랐던 전북대학교이다.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땐 출근을 하면서 잠시 교정에 들러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옛 정문을 통해 캠퍼스에 들어서면 담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첫 수업을 듣기 위해 바쁘게 발길을 옮기는 학생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20대 학창 시절로 순간 이동을 하게 된다. 출근 시간도 잠시 잊은 채, 강의실을 찾아 헤매는 신입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교정 여기저기를 걷다 보면 작은 실마리를 찾곤 했다.
오랜만에 교정을 찾았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작은 단초라도 얻기를 바라며 한걸음 내디딘다. 대학에 다니면서 꿈꾸던 당찬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사랑과 인생을 배우며 행복해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했던 추억 가득한 곳이다. 학교 고시원 옥상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던 일, 도서관 폐문 시간에 중앙도서관을 내려오면서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학창 시절 한 번도 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 미팅 한번 못하고 졸업을 해야 했던 슬픈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는 청춘 일기의 희로애락이 있는 곳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들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의 순간들이 강렬하고 의미 있게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은 그 지역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젊은 공간이다. 막 개학을 한 캠퍼스에 들어서니 어디서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모였는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이다. 고등학생 티가 나는 앳된 학생부터 예비역을 거쳐 늙다리 같은 학생까지 청년들로 캠퍼스가 꽉 차있다. 생동감이 넘치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와 미래에 대한 설렘이 충만하다. 이런 곳이 지역의 중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에너지가 침체되어가는 전주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면 좋겠다. 최근 ‘글로컬 대학 30’에 선정되어 5년간 2,000억 원을 지원받아 지역과 지역대학들의 상생발전을 이끄는 글로벌 허브 대학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역 발전과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무엇을 담으면 좋을까 고민해 본다. 전주시에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4년의 추억을 뒤로하고 덕진연못을 찾았다. 전주시민이 오랫동안 사랑하며 가장 많이 찾고 있는 공원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 단오가 되면 매년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오곤 했다. 멀리서 오리배를 함께 타고 있는 어머니와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자식의 건강을 바라며 연못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 주셨던 어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아내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처음 전주에 왔을 때도 덕진연못을 찾아 함께 거닐었다. 전주의 모습과 나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딱 좋은 곳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연못 가운데에 있는 연화정 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을 골라 자리를 잡는다. 한옥 격자 창문 사이로 보이는 연꽃은 아름다움을 넘어 속세의 번뇌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불심을 느끼게 한다. 읽던 책의 갈피에 나만 아는 표시를 하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상념을 비우며 치유와 힐링을 할 수 있어 좋다. 뒷짐을 지고 유유자적 한 바퀴를 돌아 나와 가련산으로 향했다.
가련산 고개를 넘기 위해 학교 버스를 밀고 있는 까까머리 중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덕진중학교는 가련산 아래 자리하고 있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비만 오면 통학 버스가 미끄러져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려 밀고 넘어야 했다. 지금은 포장이 되어 그럴 염려는 없어 보여 다행이다. 철없던 초등학생에서 교복을 입은 진짜 학생으로 성장하며 다녔던 중학교 3년은 무척 힘들었다. 공부가 서열화되어 매달 받아보는 성적표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성적이 오르면 오른 대로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사랑의 채근을 받으며 다녔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은 공부하기 힘든 학교로 꺼려했지만 학부모들 사이에는 공부를 잘 가르치는 학교로 소문이 나서 입학을 선호하는 학교였다. 교문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충혼탑이 옛 모습 그대로 반겨 주었다. 새벽에서 야간까지 이어지는 학교생활이 힘들어 가끔 현실에서 도망치듯 올라와 잠시 휴식을 취하곤 했던 곳이다. 잠시 충혼탑에 앉아 교정을 내려보니 후배들이 뛰노는 모습이 정겹다. 그때 함께 다녔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낼까 궁금하다.
산기슭 아래 텃밭을 가로질러 거닐다 보면 옛 법원에 도달한다. 몇 해 전 법원과 검찰청이 만성동으로 이사를 하여 현재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반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검찰청사를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삶이 떠오른다. 내가 담당한 사건만큼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닌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고 공정한 처리를 하겠다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 노력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를 마치고 산자락을 따라 덕진중학교 둘레를 거닐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퇴직 후에 누구를 만나도 떳떳할 수 있고, 내가 근무한 곳이 어디였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옛 법원 부지에 위탁개발사업으로 문화시설, 지식산업센터, 공공주택 등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한다. 전에 근무할 때 청사 현관에서 바라보면 부지가 높아 아름다운 전주 시내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장점을 살려 지역과 대학이 연계한 인공지능 분야의 허브 역할을 상징하는 타워를 세워보면 어떨까. 뒤로 가는 전주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전주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열정이 넘치는 청년들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AI 시대를 넘어 AGI 시대, ASI 시대를 준비하는 인공지능 메카 도시로 만들어보면 좋겠다.
중학교, 대학교, 직장시절까지 30여 년을 이곳 덕진동에서 보냈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이곳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덕진동을 거닐며 전주의 미래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