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히 오래도록 사랑받는 인간에 대해, 일반의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그녀의 특별한 사정
[투데이안] 와인 병과 화사한 꽃을 꽃아둔 테이블 뒤로 드리워진 커튼을 넘어, 넘실거리는 파도의 시원스런 소리를 배경으로 하고, 넉넉한 침대에 누운 그녀는 옆의 남편에게 달콤하고 분명하게 속삭인다.
알차게 살림을 꾸리고 전도양양하게 커리어를 펼치다가 자식놈 출가 후, 전원주택의 여유로운 삶을 누려보자고.
자신 만만하게 신혼의 단꿈을 ‘미래의 현실’로 규정하려는 그녀에게, 신랑은 이렇게 응대한다. “모든 일이 당신 계획대로만 될까?”
과연, 그녀는 당차고 열정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한다. 신혼여행 중 침대에서도 업무전화를 받고 과업 지시를 놓치지 않는 그녀는, 야심만만한 저널리스트이다.
유력 국회의원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의 철회와 취재원 정보 제공을 요구하자, 그녀는 협박과 매수 혐의를 문제 삼겠다고 거칠게 이 정치거물을 몰아세운다.
만삭이 된 몸을 이끌면서 현장을 누비다가, 급기야 양수가 터지는 급한 상황에서 엠뷸러스로 산부인과를 향하면서도, 이어질 업무 공백을 메꾸기 위한 조정작업을 해대느라 전화기를 놓지 않는다.
출산에 있어서도 그녀의 야심은 줄어지지 않은 것인지, 세상과의 조우를 기다리는 아이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다.
첫 아이가 세상을 접한지 30분이 지나도 출격을 미루던 두 번째 꼬마 용사를,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분출해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평범한 엄마에게 두 배로 부과되는 양육의 부담 이외로. 그녀에게 주어지는 돌봄의 의무는 차라리 ‘고통’의 그것이었다.
현저하게 느린 언어 발달을 보이던 둘째가 사소한 욕구좌절의 상황에서 괴성을 지르며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그녀에게 전달되는 의학적 분류명은, ‘인지발달 지체’였다.
이에 대해 혹시 ‘발달 지연’ 아니냐고 묻는 그녀의 기대는, 무참히 거부되고 만다.
이제 그녀에게 남는 인생의 과제는 단 하나, 나이를 더할수록 격차를 벌여가는 이 순수한 아이의 능력을 그때그때 보완해주면서, 동시에 최종 능력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벌여야 한다.
야심찼던 저널리스트의 일터를 떠나야 했고, 외벌이의 수입을 아껴가며 아이의 돌봄과 교육에 쏟아 부어야 했다.
월 200을 쓰면 5세 이하의, 월 300을 쓰면 7, 8세 수준의 정신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속설을 견고히 붙잡고서, 그녀는 발달장애 치료실을 아이와 함께 들락거려야 했다.
유치원 학급에서의 고립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그녀는 남편과 함께 둘째와 같은 반에 속한 첫째 딸의 학부모들을 키즈까페에 초대하여 향응을 대접하며, 적성에 맞지 않는 교태스런 웃음을 지어야 했다.
이 모두가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위함은 물론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진학은 예상 밖의 문제를 일으켰다.
정상적인 사회관계 맥락에 놓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서, 아이가 통합학급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녀는 결정한다.
‘미운 오리새끼’로서 부정적 관심과 차별이 아이에게 부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는 마지막 남은 겸손과 성실을 모두 쏟아 붓는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주변의 염려와 구별짓기 행동들은 결국, 아이를 특수학교로 보내어 분리의 담을 높게 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지고, 그녀는 이에 분연히 일어서서 대항하고자 한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공익을 앞세우며 차별성 강한 온정적 태도로 무장한 상태로, 은근한 압력을 제시하는 다수의 횡포를 절감하며, 그녀는 정치부 기자로서 양성해 왔던 분석과 고발의 역량을 다시 꺼내어 발휘해보고자 한다.
바로 학교 당국과 주변 세력들의 차별적 조처와 왜곡된 인식을 기사로 분석하여,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 전투적인 작업에 매달리면서, 그녀는 외친다. “그래 나와 싸울 놈들은 기어나와봐!”
『그녀에게』는 직선적인 힘을 가진 영화이다.
발달장애아의 양육자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전달하며, 대부분이 일반인일 관객에그에 대한 관심과 격려 그리고 지원이 필요함을 설득하는 데 있어, 일관된 집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계몽적 메시지가 전해지는 방식은, 따분한 설교나 엄숙한 훈화의 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는 세밀한 이야기감들의 구성력 있는 배치와 메인 캐릭터의 입체적 구축에 주로 기인하고 있다.
주변과의 격차가 너무도 뚜렷한 특성을 보이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개인이 겪어내어야 하는 온갖 어려움들이 현장성 높은 디테일들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 가정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어떻게 정착해가는가의 종단적 궤적에 따라, 정갈하고 밀도높게 배열되고 있다.
또한, 이 한 가운데에서 당당하고 야심만만했던 한 여성이 어떻게 궁리하고 좌절하며 고개숙이고 투쟁하면서,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깨달아 가는가가, 절실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남다른 삶의 방식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이 오래도록(장) 사랑받는(애) 인간(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각자가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있다.
이렇게 『그녀에게』는 다소 요란한 훌쩍거림 대신, 조용한 탄식을 이끌어내는 유효한 개념 영화로서, 스스로의 위상을 확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