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투데이안] 한국사회에는 계층, 세대, 지역, 영역 등 모든 사회 구성의 현장에서 갈등이 존재한다.
복잡한 사회 구조에서 갈등은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는 어디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처럼 심한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생각보다 아주 하위에 쳐져 있다는 것에서도 방증이 된다.
행복이 물질적, 정신적 만족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과거 70~80년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해졌지만 아직 행복의 기준에서 미흡하다는 아이러니다.
이런 갈등 구조 속에서 우리의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게 되면 행복의 지수가 높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진 만큼 그 단계에서의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결국 ‘소통과 포용’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킹의 사회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우리는 그저 ‘의사 전달과 사회적 연결고리 맺기’라는 의미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가치에는 ‘정서의 소통과 공유, 그리고 상생의 협력’이라는 본래의 깊은 뜻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각 부문에서 주관적 논리와 자의적 명분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정치적” 구조 체계를 갖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소통과 협력을 쉽게 말하지만 생각과 행동의 기초가 되는 사회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다.
올바른 사회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게 무엇보다 먼저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의 가치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감정노동이란 1983년 미국 버클리대의 러셀 혹스차일드 교수가 직업상 원래의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해 내지 않고 얼굴 표정과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표현한 개념이었다.
대부분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에서 가져야 할 표정과 몸짓의 노동성을 두고 한 개념이었지만 주위에 보면 우리 사회의 각 분야 직업 대부분이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이러한 감정노동은 이른바 대민 권한과 영향력이 막중한 정치인, 공직자, 기업가, 학자, 전문가 등과 같이 사회 지도층에게도 필요해지고 있다. 그들의 언행은 바로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공직자와 같이 국가의 권한과 권력을 갖는 사회 주도그룹일수록 더더욱 감성의 공유와 상생의 협력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지도자들에게 더욱 감정노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것을 우리는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감정노동은 각 부문의 기층 구성원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조직을 거느리고 이끌어가는 리더들이라면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회통합과 발전의 중요한 가치다.
한국의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사회지도층들의 감성노동 가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는 문화커뮤니케이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와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그는 ‘예술경영리더십’ ‘경쟁의 지혜’ ‘Blissful Mind’ 등 15권을 저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