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북소리: 준엄한 마음과 비통한 감정을 길어올리는 오페라 아리아
[투데이안] 둥 둥 둥 ... 북소리는 중단 없는 진격을 알리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해전을 지휘 중인 이순신이 두 팔을 모아 힘차게 울려대던 소리였다.
새벽 4시 경 노량에 진입한 일본의 500척 함대를, 조선군은 매복 조의 일제 기습 공격과 관음포로의 유인을 통해 궁지에 몰아 넣어 추격하고 있었다.
원거리에서의 불화살 소나기와 불대포 폭포의 세례를 받은 후, 그 많던 전함들이 대거 파손되고 수 많은 병사들이 수장돼나간 후, 이제 일본군은 바로 인접해와 있는 조선군함에서 넘어온 적들과 선상에서 치열하고 치명적인 칼 싸움을 겪어내어야 했다.
동이 트고 나고도 한참 후 까지 이 기나 긴 전투는 계속됐고, 수적 우세로 기세 등등했던 적군의 거대 함대를, 전략적으로 압도했던 조선군은 이제 추격 후 섬멸하는 상황에 위치해 있었다.
12월의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밤을 새워 전개된 이 처절한 전투 후에도 상당한 규모로 살아남은 왜군들이, 이제는 도주의 방향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군 지휘관 함선으로부터의 명령은 일관되고도 강력한 것이었다. 바로 추격을 계속하라는 ‘명령의 소리’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둥 둥 둥 . . .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후반 15분 간의 북소리는 참으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일단, 상당한 물리적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군선들 사이를 이어주는 수단으로서, 북소리는 아군 전함들과 수군들의 일사불란한 전투 수행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기능적 효과성을 가진다.
한음 한음 완만히 그러나 꾸준히 이어지는 이 음향은, 긴 해협을 여기저기 점유하며 흩어져 있던 군선들에 차례로 당도하고 있었다.
그리해 어지럽게 엉켜 붙어 상대 적의 신체를 향해 긴칼을 휘날리던 병사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통제사가 친히 울리는 북소리라는 전언과 함께 전달된 이 소리는, 한겨울 찬바람 속의 밤샘 전투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스스로의 몸들을, 조선 수군이 까마득이 잊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이순신은 진격의 북치기를 중단 없이 수행함으로써, 도주하는 적들의 완전 섬멸을 ‘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후퇴하는 적의 섬멸’은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집중해온 핵심 주제에 해당한다. 영화는 이순신이 왜군의 후퇴를 막고 그들을 가혹할 정도로 추격해 제거하려고 하는 노력을 부각시킨다.
정유년의 재란 후 명군의 협력과 이순신의 활약 및 의병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유린당하던 전라도 일대의 고통이 엄청난 규모로 발생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7년 전 명나라 정벌을 위해 길을 열라는 구호를 걸고 조선 땅의 침범을 명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장춘몽’의 인생을 끝내며, 어린 자식에게 대를 물려주며 심란한 심경을 떨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죽기 직전 유언으로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해 파병된 왜군들에게 조선 땅으로부터의 철군을 명했던 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순신과 함께 명 수군을 지휘하던 도독은, 왜군에게 퇴로를 허용해 최소 희생의 묘를 발휘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이에 순신의 대답은, ‘절대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면 안 된다’였다.
왜군으로부터 다량의 조선인 수급을 뇌물로 받아 챙기며 적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려는 명 도독을, 인격으로 감화하고 얼르고 또한 겁박해가며, 이순신은 왜군의 섬멸을 위한 기획에 치밀했고, 수행에 있어 대담했다.
이 거대한 불의의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엄정한 의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전 국토 농경지의 반을 황폐화시키고, 수백 만 조선인의 목숨을 앗아간, 7년의 전란을 일으킨 주범에 대한 단죄를 면하게 할 수는 없던 것이었다.
임진년의 침략이 결국 버거운 전황을 맞는 결말에 이르게 되자 강화하는 시늉을 벌이던 끝에, 짧은 기간 동안 지켰던 약조를 깨고 다시 정유년에 침략을 수행한 일본의 전력으로 볼 때에도, 침략자의 남은 역량과 의지를 모조리 소진시켜야 할 것이었다.
그리해 순신이 울려대던 북소리는 바로 단시안적 안일함을 버리고, 고통스런 대의의 실현을 추구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엄정한 ‘대의의 북소리’는 위풍당당함의 외피를 두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구슬픈 우울의 속살을 두텁게 품고 있었다. 끝 없이 이어지던 북소리는 잠시 중단되고 말았다.
올려치던 통제사의 어깨에 왜군의 총알이 박히게 된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쓰러진 이 거목은, 가까이서 호위하던 전우들에게 극도의 정신적인 강인함을 발휘하며 특별한 당부를 한다.
자신의 변고가 알려지지 않게 하라는 것. 그래서 곧 이어 북소리는 재개하게 된다,
눈물을 감당치 못하는 아들에 의해서.... 그렇게 둔탁하게 부딪쳐 부드럽게 퍼지는 그 북소리가 전하는 여운을, 이제는 슬픔이 차지하게 됐다.
대의를 세우려 하는 장대한 의지가 ‘거대한 소멸’이 일으키는 상실감과 우울감과 함께, 동일한 원천인 한음 한음의 북소리에서 동시에 우러나오게 된 것이었다.
결국 『노량: 죽음의 바다』가 전하는 것는 충무공 이순신과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우아한 경의’이다. 영화 중반 결전을 앞 둔 순신에게 보고되는 지난 7년 동안 전사자 명부의 이름 석자들에는, 당사자의 얼굴들이 겹친다.
북소리 시퀀스 직전, 치열한 선상 백병전 상황에서 순신의 아득한 의식의 중심에, 그 동안 함께 싸우다 사라져간 전우들이 등장해 적들을 찔러댄다.
그 중엔 하얀 도복을 입은, 전사한 아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무려 5분 동안 진행되는 이 환상 시퀀스는 이 전란이 순신 개인에게 주는 참혹함을 전하는 오페라적 순간이었다.
일체의 사실적 상황에 대한 존중을 잠시 뒤로 미루고, 주인공의 핵심적 정서에만 강렬히 집중하는 클라이막스의 아리아는, 그 ‘연장된 시간’의 운용을 통해 언제나 오페라의 감동을 폭발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노량: 죽음의 바다』의 이 환상 씬과 이어지는 긴 북소리 시퀀스는 이순신이 표정과 몸짓으로 부르는 아리아라 할 만 하다.
그렇게 노량 해협은 그 때 죽음의 바다가 됐다. 그렇게 우리의 영웅은 대의를 위하고 국운을 세우며 숭고한 희생을 이루어내었고, 영화는 충무공이 부르는 슬프고도 강인한 아리아로 이 우울한 아름다움의 오페라를 마치고 있었다.
준엄하면서도 비통스런 한음 한음의 북소리를 내면서, 둥 둥 둥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