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안] 나이를 먹어가노라면, 대인관계에서 적극적인 상호존중과 배려가 절대 필요함을 느낀다.

마케팅에서도 ‘고객지각’이라는 단어가 있다. 관계에서는 상대가 있다.

편한 사이라고 생각돼 자기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내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은 결코 나와 동일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케팅에서도 고객지각이 중요하고 이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상대이고 상대가 나 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고만이 진정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 할 수 있다. 전사모 브라더스는 이러한 묵직한 내용의 말로 시작해 이른 아침 전북 익산으로 향했다.

첫째 전사모 도착한 장소는 익산 성당포구마을이다. 마을 옆으로 아름다운 금강이 흐른다.

고려에서 조선 후기까지 세곡을 관장하던 성당창이 있던 곳으로 성당포(聖堂浦)라고 불리던 곳이다.

전통적인 포구마을의 역사와 금강의 생태를 배우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참 좋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녘에 배를 타고 금강까지 나아가 갈대숲 사이로 물안개와 함께 떠오르는 일출은 일대장관이라고 한다.

또한 배를 타고 고란초군락지를 탐방하고 금강을 따라 유람하는 금강탐방 배 체험, 국궁과 투호 등 옛 선조들이 즐겼던 전통놀이 체험, 텃밭에 나가 고구마나 감자 등 수확물을 채취하는 농사체험, 좌도농악 배우기, 바람개비열차투어, 바람개비가 이어지는 강둑을 따라 자전거 타기, 숙박테마체험공간 등 다양한 체험이 있다고 마을 관계자는 자랑을 한다.

600년 정도의 고목 느티나무 두 그루와 전라북도 기념물로 인정받은 고목 은행나무가 있다.

전장터에서 부상을 입고 이 마을에서 요양을 하다가 심었다는 나무. 풍년농사, 풍어, 무사항해 기원을 하며 마을과 함께해 준 고마운 친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느티나무에서 시작되는 동네 마실길은 숲으로 이어지고 이 길을 한 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안생태습지공원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용안면 난포리 일원의 금강변에 조성된 670,000㎡ 규모의 대규모 생태습지이다.

나무데크가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도보여행 및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청개구리광장, 풍뎅이광장, 잠자리광장, 나비광장 조류전망대, 야외학습장, 식물관찰원, 관찰데크, 갈대체험원 등이 마련돼 있다.

생태습지 안 공원에는 이른 여름에 수련, 나비바늘꽃 등이 가득 피어 꽃 정원이 돼 주고, 쉼터가 돼주고 있었다. 용안생태습지 옆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시범 억새단지가 있어 가을이면 금강억새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푸름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맛볼 수 있는 진정한 힐링 여행지이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이른 아침에 용안생태습지를 걷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 안개길인 금강과 접한 둑방길을 전사모 브라더스는 함께 걸어본다.

이내 걷다가 테크로 만들어 놓은 금강전망대 1에서 간단한 아침요깃거리와 차를 한잔 마셔본다. 시간도 공간도 먹는 음식도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만남이 너무 환상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면서 나누었던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에도 특별한 우리 자신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래서 이 공간이 너무 좋아진다. 석양이나 일출의 시간에 이곳에 다시 와서 한창을 멍 때리면서 여유로운 힐링 시간을 꿈꾼다.

시원한 강바람이 가슴까지 불어온다. 생태계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생태습지공원에서 마음의 평온함을 찾아본다.

브라더스들은 다음에는 누구와 함께 이곳을 걸어보고 싶은가? 지속되는 창의적인 농담 속에도 꽃피는 형제애 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철새를 관찰하며 금강의 아침을 감상하는 순간 대자연속에 하나가 돼 버린다.

금강생태습지를 걸으면서 대화는 이어진다. 전국에서 전북 14개 시군을 찾아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유튜브를 제작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피디로 우리의 오관식 리더를 임명한다.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음식을 소개하며 지역에 숨어있는 인물을 소개한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될 것 같다.

이를 위해 14개 시군을 2번 이상, 관광지, 맛집, 인물취재를 해보고 언론에 소개하는 것이다. 참 기대가 된다.

되도록 친환경, 기후변화 컨셉으로 숲이나 습지나 갯벌도 소개해 볼 계획이다. 전사모 때문 전북의 관광은 살아 날 것 같다.

오늘의 인물로 청년농부 전승엽(39세)님을 만났다. 수박, 메론, 상추가 주된 농작물이다.

대기업 대형조선 회사에서 용접을 했다는 젊은이다. 스마트농업에 관심을 두고 있고 농수산대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애로사항을 물어보았다. 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현재는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한다고 한다.

또 하나의 애로사항으로는 역시 마케팅 이었다. 공판장을 통해서 소비를 하거나 회원을 확보해 직거래를 하는 애로사항이다. 젊은 농부들의 관심사는 역시 소비자 직접 판매였다.

숭림사(崇林寺)는 신라 경덕왕(742~764) 때에 진표율사가 금산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익산지’에 보면 고려 충목왕 원년(1345년) 유년에 행여(行如)선사가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숭림사에는 명문기와가 현재 보관중이며 익산 지역의 대표사찰이다.

1987년에 주지로 부임한 지광스님께서 범종각, 산신각, 일주문 요사인 안심당과 해탈교, 세심교를 신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숭림사의 설화로, 1345년 고려 충목왕 때의 일이다. 당시 충목왕의 왕비 몸에 난 등창으로 근심이 가득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여러 의원들이 병을 고치려 했으나, 등창은 갈수록 심해지고 왕비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지난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됐다.

꿈속에서 어느 사찰에 자신이 머무는 동안 병이 씻은 듯이 낫게 됐고, 꿈에서 깨어난 왕비는 그 사찰의 모습과 산세를 일러주며 절을 찾게 했다.

마침내 찾게 된 절은 지금의 숭림사였다.

향긋한 향기에 취해 잠시 잠에 빠져든 왕비는 꿈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자신의 몸에 난 등창을 핥아주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잠에서 깬 왕비는 몸이 날듯이 가벼워졌음을 느끼고 등창을 살펴보니 깨끗이 나은 채 미묘한 향 내음이 풍기는 것이었다.

왕비는 관음보살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으며, 병이 완치돼 궁궐로 돌아간 왕비는 그 이후 숭림사에 전답을 하사했다고 한다. 소원성취, 오늘의 숭림사 물 맛이 참 좋았다.

오늘 익산 일정이 많다. 고스락으로 향한다. 으뜸과 최고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 옛글 이라고 한다.

숨 쉬는 전통 항아리에 우리 땅에서 자란 유기농 인증을 받은 원재료를 정성껏 골라 조상의 지혜에서 비롯된 전통방식을 배우고 익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통장을 통해 사업화를 하신다고. 고스락은 1985년 건강밥상을 중심으로 한 ‘이화동산’ 식당의 개장을 통해 설립됐다.
 

이화동산을 중심으로 주변에 소나무 정원을 꾸미고, 20여년간 전국 각지의 50년 이상 된 전통항아리들을 모아 보관하고 있다.

2008년에는 영농조합법인 다송이사람들이 설립돼 유기농 원료를 이용한 전통발효식품과 전통장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먹거리를 통한 전통과 한식문화 계승발전을 도모하고 인정이 있는 지역관광명소로서 사회에 공헌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진도 찍으면서 데이트하기 좋은 고스락이다. 그 많은 나무를 뻘뻘 땀 흘리며 조경을 하고 있는 어르신이 눈에 띈다.

이때 고스락 대표님 포스로 전동차를 타고 다니시면서 분이 계셨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조금 쉬면서 일하세요” 큰 소리로 외친다.

ESG를 잘 준행하고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배려와 인간존중의 대표님이라는 생각이 된다.

무척 감동이 된다. 고스락의 항아리정원에는 다양한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총을 맞아 구멍 뚤린 항아리는 물론, 단풍나무길을 따라 꽃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는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돌담길로 조성돼 있는데, 반듯한 돌담이 아닌 자연석 그대로의 투박한 돌담은 정겨운 느낌을 전해준다.

전망대에서 보여지는 고스락은 시원하게 크고 있는 소나무들, 전체 공간은 점점 확장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익산시 문화관광과)

배가 고파진다. 오찬을 황등에 있는 시장안에 있는 맛집 황등비빕밥으로 향한다.

황등비빔밥은 육수에 토렴해 밑간으로 미리 비벼놓은 밥에 양념한 소고기 육회를 풍성하게 얹어 선짓국과 함께 내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의 향토음식이다.

황등비빔밥은 예로부터 ‘황등석’으로 알려진 품질이 뛰어난 화강암의 산지였던 황등면의 부유한 경기를 배경으로 석공들을 위한 음식상품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한다.

재료와 조리법에서 일반 비빔밥과는 확연히 다른 황등비빔밥은 소고기 육회가 주재료인 것이다. 황등면은 한때 석재가공 공장이 150여 개소가 넘을 정도로 경기가 좋은 곳이었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사람이 모이면 장이 들어서고, 장이 들어서면 식당이 생긴다. 식당이 들어서면 여러 가지 음식도 선보이게 마련이다.

황등면은 지형의 대부분이 평지여서 기름진 논과 우시장이 있어서 좋은 쌀과 소고기를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인근에는 농수산물이 풍부하게 나는 김제와 군산이 있어 다양한 식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과 일제강점기 때부터 품질이 좋은 화강암의 생산지로 경기가 좋았던 황등면의 사회적 배경이 결합해 탄생한 음식이 황등비빔밥이다.

황등비빔밥 음식의 유래에서도 다른 비빔밥과 차이가 있다. 전주비빔밥은 오래전부터 해당지역에서 만들어 먹던 향토음식이 상품화가 이루어졌고, 지방자치단체 혹은 정부의 마케팅에 힘입어 유명세를 얻게 됐다.

그 반면에 황등비빔밥은 애초부터 음식상품으로 개발된 음식이고, 그 시기 또한 8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음식이다.

1936년 무렵부터 황등비빔밥을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80여 년이 넘는 세월을 3대에 걸쳐 명맥을 계승하고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전주비빕밥에 익숙한 전사모 브라더스 들도 황등 맛을 인정한다.

가성비 또한 좋았다. 백종원 대표와 허영만 작가가 방문해 인정한 맛이었다.

지자체마다 탁월한 간식이 있어 좋다. 평소 익산에 가면 찾아 먹고 그맛을 기록해 보고 싶었던 상상속의 떡. 익산농협 생크림 찹쌀떡을 먹으로 익산농협으로 향했다.

취향대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찹쌀떡. 초창기에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100미터가 넘었다는 그 떡이다.

기대를 하며 도착해 매장에서 찾아보니 흑임자 찹쌀떡 한 종류만 남았다. 지난 수능을 앞두고 마련한 생크림 찹쌀떡 온라인 판매가 방송시작과 동시에 완판 됐다고 한다.

18개로 구성된 박스 2000개가 10초 만에 팔려나갔다. 참 대단한 인기이다. 농협 관계자들은 찹쌀떡 성공은 쌀 소비촉진의 좋은 사례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흑임자는 참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석이조의 찹쌀떡이 맛도 의미도 좋았다. 편의점에서 원하는 양을 구입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오늘의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익산에서 추가적으로 5개 정도 익산 탁월한 간식을 개발해 소상공인들과 지역관광에 잘 활용되길 바란다.

마지막 일정이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이다.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 달리 세 개의 탑과 금당 등으로 구성된 3탑 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이다.

이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이다.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다. 창건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확인 할 수 없으며, 17~18세기 이전 1층 둘레에 석축이 보강됐고 1915년 일본인들에 의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졌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동쪽 탑은 9층짜리 탑으로 복원된 것에 비해 최근 공개된 서쪽 탑은 6층까지만 복원됐고 그마저도 사방이 전부 제각각인 미완성의 모습이다.

20년이나 공들인 석탑을 미완의 모습으로 남겨둔 데에는 다 사연이 있다고 한다. 동쪽 탑 복원을 추진할 때, 석탑의 원형을 알려주는 문헌이나 그림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2년 만에 졸속으로 탑을 완성시켰다.

한국문화재 복원 역사상 최악의 사례로 꼽히는 동쪽 탑을 보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최악의 복원 사례고 폭파해 버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필자가 볼 때는 서쪽 탑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깊은 속사정은 모른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이 누군가의 아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일제시대의 콘크리트를 덧씌운 모습의 석탑 복원은 오히려 무책임의 극치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 사료를 통해 복원해 보자.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AI 도움을 받아서 참고해 보자.

서쪽 탑의 무책임한 복원이 미래세대에게 오히려 더 큰 문제거리라 생각된다. 이웃 충남 부여의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과의 단순비교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하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백제인들은 미륵사를 통해 평등한 삶을 염원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려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백제인들의 신념의 결정체 미륵사지였다.

지금의 미륵사지가 미륵신앙을 기초해 전북과 대한민국이 큰 비전과 사명을 제시 할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변화를 희망하며 전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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