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쌀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혼(魂)이요 생명줄로 인식해 온터라 외국쌀이 들어올 경우 민족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毁損) 될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결국 황실 군대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수입쌀은 가까스로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수입쌀에 대한 저항, 어제의 민중(民衆)은 그랬다.
100년 후, 오늘의 쌀을 본다. 2006년 이른 봄 쯤 이었을 게다. 쌀 재협상이 마무리 되면서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결국 식탁까지 내주고 만 밥쌀용 수입쌀이 부산항에 입고되던 날, 뿔난 농민들은 어제의 민중처럼 격렬한 저항으로 맞섰다. 그렇다. 100년전 처럼 적어도 쌀만큼은 우리 민족의 혼(魂)이요 생명줄로 인식함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었을 게다. 결국 정부의 삼엄한 경비속에 미국산 수입쌀 2만여톤은 뿔난 농심을 우롱하듯 농약냄새를 풍기며 당당하게 창고에 입고되었다. 수입쌀에 대한 저항, 오늘의 민중(民衆)도 역시 그랬다.
그뿐인가? 시인마저도 수입쌀에 대한 두려움을 붓으로 토로(吐露)해냈다. 6년전에 작고하신 저 친숙한 우리의 민족시인 편운(片雲) 조병화 님의 외국산 수입쌀에 대한 경고는 몸서리 쳐질 정도로 날카롭다.

끓는 물 더운 김에 속절없이 죽겠지만
그 쌀로 밥 해 먹다
우리네 피와 살과 뼈가 바뀌어
마침내는 우리네 희디 흰 마음까지
울긋불긋 푸르죽죽 물들고 말리라.
처음엔 그랬다. 수입쌀이 시판되던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 의 민족혼과 생명줄이 푸르죽죽 물 들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수입쌀 밥맛이 형편없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입쌀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 민중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듯 했다.수입쌀에 대한 불안심리로 추락하던 국내산 쌀값마저 오름세로 반전하는 현상까지 나타나자 이는 애국심의 발로(發露)요, 우리쌀의 품질 경쟁력이 수입쌀을 앞선 결과라 자평하며 아무리 수입쌀을 들여와도 끄덕 없을 것이라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입을 모았다.
그러나 과신(過信)이었다. 1998년 일본이 쌀 완전개방(관세화)을 선언하고서도 수입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네들 민족의 의식구조의 승리이자 도라도라식 애국심의 발로(發露)였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섣부른 자화자찬의 이면에 눈치 보며 숨죽이며 기회만을 노리던 야몰찬 상업적 이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부산항에 입고된 수입쌀에 대한 정부의 공매가 시작된 지 100일도 채 안되어 전량이 불티나듯 팔려 나가 버린 것이 이를 반증한다.
국내산 쌀 공급과잉구조를 타개할 묘책마저 없는 현실이기에 수입쌀의 교묘한 유통을 통한 상업적 이기에 눈먼 유통업체들의 횡포는 자제되어야 한다. 삭뚝스런 비유일지는 모르나 밥상에 오르는 주식이 똥개 사료 값의 절반도 채 안 되리 만큼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려 남아도는 쌀문제로 고민해야하는 현실에서 절반이상을 해치워주고 있는 유통업체들을 탓할 것만도 아닐 터이지만 적어도 쌀은 하나의 상품이기 이전에 겨레의 혼(魂)이자 피와 살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업인들의 윤리의식과 상도덕이 요구되는 상도(商道)가 지켜야 할 때이다

오늘의 수입쌀 부정유통, 거상(巨商)임상옥이 무덤을 파헤치고 몽둥이 들고 쫒아 올 일이다./나병훈 전북도교육청 농협지점장(starion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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