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고창 출신으로 조선 최초 여류 명창인‘진채선(陳彩仙)’의 삶과 사랑이 TV 드라마로 제작된다. 국내 모 기획사에서 드라마‘도라화가(桃李花歌)’라는 이름으로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에서 고창을 가는 길, 선운사 입구를 지나 4km쯤 더 가다보면 이르는 곳이 심원이다. 심원면 소재지에 이르기 직전 바닷가 쪽에 있는 동네가 월산리인데, 이곳 사등마을 앞, 검당포가 바로 진채선 출생지이다.
드라마‘도라화가(桃李花歌)’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이다. 여성의 신분과 신분의 차별을 극복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명창의 반열에 오른 여인 진채선의 삶을 통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진취적인 삶의 자세를 찾아보게 한다.
이 드라마는 초월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조선 최고의 명창 진채선의 인생과 그녀를 사랑했던 흥선 대원군, 신재효, 그리고 김광현 네 사람의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이다. 신분의 차이, 나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한다. 스승과 제자가 마음을 나누었고 왕족과 천민이 애증을 공유했다.
진채선 그녀는 타고난 소리꾼이었다. 또랑광대인 아비와 당골 무녀인 어미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세상 첫 울음소리부터 그녀의 목청은 남달랐다. 그러나 신분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천한 부모를 둔 자식은 천한 운명 또한 타고 났다. 비천한 운명에 윗방아기로 팔려가 곤욕을 치르며 생을 포기하려 할 때 어린 채선을 구한 건 판소리였다.
이후 그녀 삶의 대부분은 판소리가 되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한풀이할 유일한 위안이 판소리였고 그녀의 천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탈출구도 판소리였다.
그녀는 자유를 꿈꾸는 천민이었다. 왜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는지 왜 천민의 자식은 천한 운명을 살아야 하는지, 왜 그런 운명을 거부하면 안 되는 지 알 수 없었다. 태어날 때 비록 천한 사람이었으나 죽을 때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으로 죽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고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판소리가 그녀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사랑을 하고픈 여인이었다. 그녀는 판소리를 사랑했다. 그리고 판소리를 하는 사랑하는 두 남자로부터 절절한 사랑을 받았다. 허나 사랑이란 본시 둘만 할 수 있는 것이라 그녀 또한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온전한 사랑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사랑해선 안 되는 남자를 사랑했다. 또한 한 남자의 구구한 사랑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상 제일 어려운 일은 신분을 극복함도 아니요, 명창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보다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상대에게 주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신분의 비천함과 그녀가 했던 사랑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그녀를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했을 것이다. 판소리로 자유롭고 싶었고, 판소리에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던 여인, 그녀가 바로 진채선이다.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봄이 드니/.../ 도리화가 구경가세/ 꽃 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고/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렴궁의 해어화인가/ 해어화 거동 보소/ 아리땁고 고울시고/ 나와드니 빈방 안에/ 햇빛 가고 밤이 온다/ 일점 잔등 밝았는데/ 고암으로 벗을 삼아/ 잠못들어 근심이요/ 꿈 못이뤄 전전한다/.../ 언제나 다시 만나 소동파를 불러 볼까>
여기서‘도리화(桃李花)’는 채선을 뜻하며‘스물네 번 바람불어’는 그녀의 나이 방년 스물네 살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 노래는 몸져누운 신재효가 진채선에게 띄워 보낸 연가였다.
이 노래를 전해들은 진채선이‘추풍감별곡’을 불러 스승에 대한 간곡한 마음을 드러냈다. 대원군이 마침내 그 뜻을 헤아려 채선의 하향을 허락하였다. 노년의 스승을 보살피며 명창으로 활약하던 진채선은 스승이 타계하자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이름 모를 암자에서 세상을 하직했다고 전해진다.
● <새전북신문> 수석논설위원
● <한국의 성씨> 전문기자
● <통일부 남북통일교육>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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