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다섯 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21세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이때부터 중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난다.
10년 가까이 전국을 떠돌며 자신과 세상의 불우함을 시로 읊었다. 그 때 쓴 책이 바로 첫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다.
매월당의 시 가운데 유명한 <사청사우(乍晴乍雨)>가 있다.
“언뜻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이니, 하늘의 도(道)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 인정이라. 나를 기리다가 돌이켜 나를 헐뜯고, 공명을 피하더니 도리어 스스로 공명을 구함이라.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릴고. 구름 가고 구름 오되, 산은 다투지 않음이라.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두라. 기쁨을 취하려 한들, 어디에서 평생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를”.
<사청사우>라는 말은 “개었다 비오다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 인심의 변덕스러움을 날씨에 읊은 것이다.
요즘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같이 않다는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전혀 실감을 못했는데 옷을 벗고 나와 보니 상황이 영 다르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 모른다.
정승 부인이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적은 법이다.
세상인심이 원래 그런 것인데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냐고 핀잔을 받을 일이다. 권세와 지위가 있을 때는 붙어 따르다가 세력이 약해지면 멀어지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세상 인심은 박정한 것이다.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쫒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것이 세속의 인심이다.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도 어느 날 별 볼일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단칼로 무 자르듯 문전박대 당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가 다시 헤어져 기약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아니다.
세상 인심은 그만큼 차가운 것이다.
한번 어려움에 처해보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자기를 바로 보려면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면 안다. 안면을 바꾸는 일이 주변에서 곧바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안면물수 차원을 벗어나 한술 더 뜨는 경우도 많다.
아예 무시하고 비방 여론까지 퍼뜨리면서 깔아뭉개는 사람도 나온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상대방이 잘 나갈 때는 간이라도 빼줄듯이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다가도 신분이 달라지고 벼슬이라도 높아지면 어느새 상황은 달라진다.
생면 부지한 사람들도 친한 척하고 몰려드는 판인데 그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이다.
가진 것 없고 천하게 되면 모두들 업신여기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신분이 추락해보면 실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예부터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변하듯 부귀와 영화도 순간이고 머지않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미학을 모르고 그 자리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다 보면 불행에 직면하기 쉽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행복한 계절도 있고 불행한 계절도 있는 법이다. 굳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잘 나갈 때 너무 기고만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늘 잘 나간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손자는 언젠가 할아버지가 되고, 후배는 언젠가 선배가 되는 것이 인생 진리”라고 도산 안창호 선생도 말했다.
잘 나가는 자리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 자리가 결코 못 박아 놓은 자리가 아니다.
직장을 떠난 동료 퇴직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는 못할망정 비난하는 그런 인심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그 자리를 떠나면 더 많은 업신여김을 받기 십상이다. 덕은 닦은 데로 가고 죄는 지은 데로 간다.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하루아침 이슬과 같은 그야말로 <초로인생>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면서 그날 그날을 보내고 있을 뿐 결국에 가서는 다 같이 백골로 아니 한줌이 흙으로 되어질 운명이다.
봄꽃도 한 때다. 잘 나갈 때 한 번 더 자신을 추스르고 챙기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새전북신문> 수석논설위원
● <한국의 성씨> 전문기자
● <통일부 남북통일교육> 전문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