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왕은 다이네믹한 시대를 열었다

한봉수 문학평론가, 전북과미래연구소장, 후백제시민연대공동대표
한봉수 문학평론가, 전북과미래연구소장, 후백제시민연대공동대표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에 왜 후백제가 제외되었나?

‘고대사 역사문화권’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등 6개가 지정되며 후백제가 제외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제1조(목적)를 보면, '이 법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문화권과 그 문화권별 문화유산을 연구·조사 하고 발굴·복원해 그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어서 제2조에 '역사문화권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형·무형 유산의 생산 및 축적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발전시켜 온 권역으로 현재 문헌기록과 유적·유물을 통해 밝혀진 다음 각 목의 권역을 말한다'

문화재청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의 제정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금년 6월 10일부터 시행했다.

'특별법'은 지정된 역사문화권 문화유산을 연구·조사, 발굴·복원, 정비해 그 역사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지역발전을 도모하고자 2020년 6월 국회 제정된 바 있다.

‘역사문화권’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등 6개만 지정되고 후백제가 제외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후백제는 어떠한 나라인가. 48년간(889년 ~ 936년) 존속하며 완산(전주와 완주)을 도읍지로 산성을 쌓고 커다란 왕궁을 지어 고대사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지 않았는가.

전주는 조선왕조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900년부터 37년 동안 후백제의 왕도(王都)였기 때문에 천년고도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후백제의 한국역사에서의 위치는 어떠한가?

후백제는 비록 반세기 2대 왕조에서 멈췄지만 한국사에서 그 지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역사 변화와 정신사의 발전을 실천.주도했다는 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

첫째로 신라후기 고대사에서 중세로의 전환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호족이 득세하며 봉건적 지방분권이 촉진되어 중세사로 넘어가는 과도기 그 중심적 역할을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담당했다.

특히 후백제의 견훤왕은 둔전제(중국조조 실시, 전방조달 농지경작)를 실시하고 합덕지 방죽을 축조하는 등 농업생산을 증대하며 생활을 크게 개선하였다.

둘째, 외세(당)를 끌어들여 대륙을 잃고 불완전하게 통일된 한반도가 후백제를 통해 당 역사문화권에서 벗어나고 외교의 다변화가 촉진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후백제는 오.월,거란,왜와 교류하고 한류의 뿌리가 된 완산(전주)권 고유 문화와 정신사를 승계했다.

견훤은 마한과 백제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백제(百濟)라 하고 세상을 바르게 열어보자는 뜻으로 연호를 정개(正開)라 했다. 전주는 고려를 멸한 조선 건국의 본향 도시의 토대를 다지게 된다.

셋째, 신라말 골품제의 폐해와 부패 향락과 권력 쟁탈로 왕이 살해되는 어수선한 정국으로 전제 왕권과 귀족의 통치정신인 교종(조화와 통합 중시)불교가 퇴화됐다.

대신 민중중심의 선종(불성 깨달음 중시)불교로 전환 계기가 되며, 견훤은 미륵불 신앙으로 정신사 변화를 주도했다.

변혁의 중심에 후백제가 있었다. 그래서 미륵정토인 금마산(용화산)있는 익산 아래 완산에 좌정했다.

네째, 후백제는 미니통일로 왜곡된 사대사관에 희생된 ‘역사 바로세우기’의 대상인 백제의 후왕국이다.

작년 말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견훤(甄萱), 새로운 시대를 열다’라는 기획전이 개최되고, 이어 금년 3월말에 상주박물관에서 ‘역사에서 신화가 된 견훤’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이어져 큰 관심을 끌었다.

영호남 교류라는 역사적 당위성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백제 유적발굴과 역사인식에 앞장서 온 두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다.

“후백제 유산에 대한 국가문화재 등재작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후백제 ‘正開’ 연호가 새겨진 편운화상부도가 우선 순위임은 분명하다” (이도학교수)

“ 또한 후백제문화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추진하는 미래전략을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 (곽장근교수)

▷후백제 역사인식 정립과 확산을 위한 전주시민의 노력

후백제학회(회장 송화섭)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을 중심으로 후백제의 역사유적들이 발굴 진행중이다.

다만 지원자금이 터무니 없이 적어 속도를 못내고 있슴이 안타깝다. 그래도 후백제의 도성, 궁성의 발굴을 통해 고고학적 평가를 얻어 냈다.

전주시 노송동과 인후동 일대 재개발로 도성 유적들이 훼손될 우려이다.

후백제가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이 정한 역사문화권에 꼭 포함되어야 할 이유이다. 후백제의 왕릉, 사찰유적과 불교문화유산, 청자.도자문화, 해양문화, 대외교류 등 고대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유물들이 전라남북도와 충청 전역에서 속속 발굴되었고 발굴중에 있다. 더딘 속도가 안타깝다.

금년 5월, 전주시민들이 모여서 후백제 역사정립과 역사인식 확산을 위해 <후백제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출범시키고 6월에는 ‘후백제와 견훤 ’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 및 시민 대토론회를 성대히 개최했다.

후백제시민연대는 금년 전북과미래포럼(대표 한봉수, 최석규)이 주관한 5월후백제 주제포럼(강사 곽장근교수)을 하고 ‘행동강령’과 함께 출범한 뒤로 6월 에는 후백제학회와 시민대토론을 공동주최한 바 있다.

이어서 7월에는 인봉리와 기자촌일대 왕궁추정 유적지를 답사하였고, 10월 16일에는 동고산성일대 동고사, 성황사지와 왕궁터를 답사했다.

앞으로 남고사와 봉림사등 전주권뿐 아니라 부안,김제등 후백제 –해양진출권 루트, 순천만 일대등 견훤 초기활약지역, 상주,가은 일대의 견훤의 소년,청년기 유적을 답사하며 그때마다 다양한 정보,정책등을 나누고 국민과 정부에게 알리고자 한다.

후백제선양회(강회경이사장,이철우총무)는 2017년 출범이후 금년 10월 15일 <후백제개국 전주정도 1121주년 기념식>과 <제5회 견훤대왕숭모대제>를 행례한 바있다.

앞으로도 후백제 역사문화 선양공원을 조성토록 시민운동을 전개하여 견훤대왕의 영정제작, 사당과 역사문화유산 체험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후백제선양회 기념식 축사에서 “동고산성이 사적지로 지정받게되어 그동안 노력이 결실을 맺을 거”라고 말했다.

또한 "후백제 왕성의 서쪽 성벽으로 고증된 자리(노송동)에 ‘후백제 역사관’ 건축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주시는 2000년 - 후백제가 서기 900년에 전주에 도읍하고 1100년 된 해-을 기념하여 ‘후백제문화사업회’를 발족하고 학술대회와 조사.발굴을 지원해 왔다.

금년 6월에는 전주시가 주도하여 전국 7개 시군이 모여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한 바 있으며 지난 11월 26일에는 발족식 및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족된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는 전북 전주·완주·장수·진안과 경북 문경·상주, 충남 논산 등 후백제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문화유적이 산적해 있는 시·군이 회원기관으로 참여했다.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는 여러 지역에 분포된 후백제의 발자취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백제사에 대한 역사 인식을 전환하고 후삼국시대 최강대국인 후백제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주력하자고 뜻을 모았다.

▷특별법 개정을 바란다.

- 견훤왕은 다이네믹한 시대를 열었다.

백제가 당이라는 제국국가를 끌어들인 신라에게 멸망한 뒤 전라도는 1400년간 지워져 가야 하는 비주류의 흐름 속에 역사의 변방에 있어 왔다.

패전의 땅에서 키워오던 소슬한 저항정신과 해양에 대한 진취적 꿈은 안으로만 인내의 깊은 호수를 만들며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선비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임진,병자난때 혁혁한 구국 의병활동과 요원의 불길이 된 동학농민의 외침 ,광주시민의 피는 이러한 저항정신과 충절의 뿌리에서 이어온 것이다.

이토록 이 땅에 잠재되어 쌓여오던 에너지가 외부 충격으로 뇌관이 한 번 터져질 때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할 수 있겠다.

외세를 끌어 들여 반쪽 통일을 이룬 신라의 정신사적 소멸은 필연이었다. 나라 민심은 흉흉해지고 귀족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다.

시대가 변화를 원했고 백제(후백제는 후세 역사가가 지명)의 견훤이 앞장섰다. 연호 ‘정개’처럼 ‘세상을 바르게 열겠다’는 그 기개와 진취적인 정신이 우리 민족의 원래 정신이지 않은가?

논산에 가면 견훤왕릉이 있다. 논산시장 명의의 안내문을 소개한다.

“ 후삼국중 가장 강성했던 후백제를 창건한후 중국의 오,월나라와 대등한 국교를 맺고 후삼국 통일을 염원했던 우리 지역 유일의 왕릉인 견훤왕릉 입니다.“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한국사에 다이네믹한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후백제의 땅에서 새로운 민족문화.관광의 시대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년 초 정기국회 때 개정을 통하여 후백제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꼭 포함되길 기대한다./한봉수 문학평론가, 전북과미래연구소장, 후백제시민연대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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