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올 여름 가장 모범적인 대중영화

조 현 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


『국가대표』는 실화라 한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떨거지들로 살아가는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 스키점프라는 비인기종목으로 올림픽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그리 특별할 게 없다.


우리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로 출발한 영화는 그러나, 5명에 이르는 이 사회적 패자들의 도전기를 엮어나감에 있어, 감동과 재미를 자아내는 대중문화상품 흥행의 비밀병기를 아낌없이 구사하며 진부함과 재미로움을 동시에 발휘하게 되었다.

그 비밀병기 1호는 역시 ‘신파’이다. 주인공 모두는 ‘약자들간 연대’를 선동하기라도 하듯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먼저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자신을 찾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을 버린 코리아’의 국가대표선수가 되어야 하는 미국 입양 청년이 있고, 자신을 팀으로 유혹하는 감독의 늘씬한 딸의 마음을 쟁취해야만 하는 망나니 나이트클럽 웨이터가 있다.

또한 지배적인 아버지의 매질과 통제 속에서 중국인 종업원과의 사랑과 자신만의 독립적인 성취를 인정받아야 하는 아들이 있고, 무기력한 가족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기필코 따내어야 하는 불우가장청년이 있고, 또 천진하고 무개념하게 끼어드는 그의 정신지체 동생이 있다. 하나하나가 기구한 약자들의 사연을 담고 있어서, 5명의 ‘올림픽 국가대표’로의 등극은 그만큼 벅찬 감동의 잠재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두 번째 비밀병기는 수수한 갈등과 그 해소이다. 감독의 매혹적인 딸을 사이에 두고 입양청년과 망나니 청년이 벌이는 티격태격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경쾌한 톤에 실려 예상된 화해를 향해 순항한다.

또한 순전히 개인적 동기로 선수모집에 적극적이었던 감독의 의도가 코리아의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라는 사건을 계기로 확실히 드러나게 되나, 이에 낙담과 분노로 응하던 팀원들은 어느새 개인적 성장과 국가의 명예를 위해 재도전의 결의를 실천에 옮긴다.

또 하나의 비밀병기는 유머이다. ‘인심’과 ‘임신‘을 혼동하여 양부모의 소개가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입양남의 대목에서는 언어의 유희가 구사되고 있고, 경사도와 설계가 잘못되었다고 투덜대면서 새로 설치된 연습활강대에서 꽁무니를 빼는 상황에서는 캐릭터의 입체감과 사건의 진행상황을 애교있게 전달하기도 한다.

외국인 처녀와의 연애질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한다고 위협하자, 전혀 다른 종류의 신고 (혼인신고)를 해버렸다는 아들의 짧은 맨트는 캐릭터와 사건을 순식간에 전달하는 함축미를 발휘하기도 한다.

마지막의 가장 막강한 비밀병기는 역시 스키점프의 비상과 하강을 전하는 우아한 카메라이다.

육중한 도약대를 쾌속으로 통과한 선수들의 육체가 독수리의 힘으로 강력한 업!을 이룩한 상태에서 다시 도도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돌면서 만들던 자태가 마침내 하얗게 빛나는 착지대를 향해 너울거리는 모습으로 전환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몸을 동일한 괘적으로 안내하여 안전하고도 상쾌한 상승과 하강의 쾌감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가히 유려한 시각적 체험이 순수한 감각적 미의식을 일깨울 수 있음을 웅변하는, 영상언어의 인상적인 임팩트 사례라 할만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국가대표』의 비밀병기들은 스스로를 향한 공격무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 대중의 안일하고 피상적인 감각에 어필하기에 더없이 효과적이던 장치들도 사실은, 하나의 진지한 예술작품으로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완성도에는 흠집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개별적인 사연들은 최종적 감동을 생산하기 위해 병렬적으로 결합된 부자연스런 직조의 결과이며, 불쑥 제시되어 선량한 방식으로만 해소되는 갈등들은 현실의 그것들을 닮는 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상황과 언어가 주는 감칠맛에 집중하고 유려한 미장센에 집중한 나머지, 영화는 그 어떤 사회적 문제의식이나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냈다고 볼만한 요소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오!브러더스』와 『미녀는 괴로워』로 다작을 피하며 흥행감독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해왔던 김용화 감독은, 이번에도 대중의 기호에 정확히 부합하는 영화를 세련된 스타일로 완성해내었다.

게으른 소비자로서 관람객들은 언제나 이처럼 무난하게 정겹고 즐거운 영화를 고대하고 있다. 은막 시장에도 그러한 즐거움을 견실하게 제공하는 믿음직한 브랜드가 요청되고 있다.

국가대표』는 그러한 브랜드에 속하는 양질의 상품으로 당당히 소비자들의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