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안] 아호는 백안(栢岸)이요, 본관은 찬안으로, 두령군파 59세손이다.

전종환 학도병은 1932년 1월 2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서 부친 전상호(全相鎬) 공과 모친 이복례(李福禮)여사의 사이에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전주 북중(6년제) 졸업을 앞둔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소집되어 군에 입대했다. 당시18세 나이다.

가열했던 경북, 영천, 포항작전에 참전해 많은 학우들이 산화 희생되는 가운데 위기의 국가 운명을 수호하는 일익을 담당함으로서 후일 '호국영웅기장'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 55년 졸업후 첫 직장이 심계원이었고 이어 조달청 등 중앙관서에서 근무했다.

고향에 연고가 있어 1964년 전라북도지사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지방내무 행정관료의 길에 접어들었다.

전라북도청 공무원으로 몸담은 이래 오로지 공직 외길을 천직으로 여기며 매사에 치밀하고 탁원한 업무추진력을 발휘해 맡은바 직무를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서 동료공직자들의 손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75년 상공과장 시절에는 '전국관광민예품 개발 경진대회'에서 전국1위로 대통령봉황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44년 지방과장시절에는 '이리역 화약폭발사고'가 터지자 사고수습과 재해복구 그리고 도시재건에 힘써 도시정부로부터 유공모범공무원으로 '헌신봉사상'을 받았다.

78년 순창군수 때는 강력한 새마을 운동을 성과있게 전개하는 동시에 그 혹독한 '노동벼 파동'을 극복하고 식량증산에 기여해 전국 최우수군으로 국무총리상과 모범공무원으로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85년 군산시장때는 관내의 미공군기지 장병과의 한미친선사업을 성과 있게 추진함으로서 美국무성의 특별초청으로 도미해 감사장을 받고 민간인으로서는 청일점으로 공군장관과 나란히 옆에 자리해 시상식에 참여했다.

그후 10여일간의 미국내 명소 안내를 받으면서 '타코마'시와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중후하고 강직하면서도 남다른 책임감과 봉사정신으로 전북도의 최핵심 행정요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풍요로는 선진 전북건설'에 중추적 견인 역할을 담당했다.

1992년 기획관리실장(이사관)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행정유공인사이다.

퇴임한 뒤에는 전라북도교통문화연수원장, 전라북도 승마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소련모스크바 승마협회를 방문했다.

한소승마경연대회를 유치해, 새로 조성된 전주승마장의 개장을 겸한 축하친선경기를 개최했다.

전라북도 애향장학재단이사를 역임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외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1993년에는 제5대 천안전씨 대종회부회장으로 추대돼 종사에 힘쓰고 2007년에는 서울대학교전북동창회장을 맡아 동문간의 교분을 두터히 했다.

또한 2019年 8月22日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를 대문밖 문에 부착시켜주는 영광을 받았다.

가족으로 부인 공순구 여사는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부장을 40여 년간 성실히 봉사한 공이 인정돼 스위스 국제적십자사로부터 '나이팅게일' 기장을 수상했다.

전주대학을 거쳐 전주예수대학교 재단이사장을 역임했다.

슬하에 성은, 지은, 소영, 2남 1녀와 6명의 손자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전종환 6.25 학도병은?

▷전주고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전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정책관리자과정수료, ▷전라북도 기획관, ▷순창군수, ▷완주군수, ▷전라북도 보건사회국장, ▷식산국장 ▷내무국장, ▷정읍시장, ▷이리시장, ▷군산시장, ▷전라북도 기획관리실장(이사관 정년퇴임), ▷전라북도 교통문화연수원장, ▷(주)한풍 상임고문, ▷전라북도 애향장학재단 이사 ▷대통령 표창, ▷6.25참전유공훈장, ▷국가발전 유공자 표창, ▷녹조근정훈장, ▷적십자 유공장, ▷애향장, ▷서울대학교 공로장, ▷노태우-전두환 대통령 표창메달

저작권자 © 투데이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