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수 투데이안 고문, 전북과미래연구소장(문학평론가)
-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투데이안] 전주에 가면 완산칠봉 끝자락에 있는 초록바위와 곤지봉을 아시나요?
조선 초 전주의 땅을 넓게 잡아 북쪽 건지산을 지명해 이씨조선의 본향으로 드려내려니 우주의 기운이 닿는 곤지봉을 찾아 남쪽 완산칠봉 투구봉 일부를 지명한 거 같다.
초록바위는 전주 중심통 팔달로의 남쪽 전주천을 건너 싸전다리 우측에 지금은 절벽바위를 말한다.
전주천의 지금의 흐름을 만들려고 물속에 정으로 쪼은 초록바위 흔적들이 보인다.
조선 3대 시장이었던 남문시장을 넓히려고 초록바위자락은 거의 분해되어 옛모습은 없다.
드러난 절벽마저 낙석방지 콘크리트 처리되어, 다만 틈 사이로 엷은 초록만 언뜻 언뜻 보일뿐이다.
초록바위는 수백 년 처형의 문화재이다. 이곳에 수많은 넋들이 이렇게 꽃으로 피고 있는가? 천주교 신자와 동학교도들도 이곳에서 초록 이슬로 스러져 가셨다.
아! 개남님도 가셨지, 이 바위에서.
왜 이조 풍수의 성스러운 곤지봉이 참형의 터가 되었을까?
2백년 넘은 이팝나무 24그루가 5월에는 일제히 꽃을 피어 하얀 진혼곡을 들려 준다.
지금은 일대가 꽃동산이 되어 있다. 주변 인가에서는 달맞이 동산이라 하는데 매화꽃들이 많아 사람들은 그 인가를 매화마을이라 한다.
바위 정상이라 하지만 2백여 개 계단만 오르면 된다. 오르니 초록 풀밭이 반긴다.
숨 고르고 내려다보니 전주 시립 최초인 완산도서관이 바로 아래에 보인다. 건너에 투구봉 철쭉동산에는 꽃눈들이 힘을 모아 4월의 붉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희고도 붉은 축제는 왜 이곳에서 열리는가?
오늘 초록의 정상에 만개한 한그루 홍매화가 유독 눈에 띈다. 아, 이 초록에서 목이 잘려 소금에 절여 서울로 갔다는 김개남 장군 생각에 붉음이 뚝뚝 서러웁다.
곤지봉 건너 보이는 투구봉에는 최근에 세워진 듯한, 동학전사들을 추념하는 녹두관이 있다.
조심히 들어가서 벽에 비쳐진 보국안민의 깃발아래 서서 사진 한장 찍었다.
녹두관에는 김개남 장군의 유골이 무명의 동학 전사들과 일본에서 90여년 만에 돌아와 투구봉에 안치된 사연이 깃들어 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동학농민군이 불렀던 혁명가다. 갑오년(1894) 단숨에 혁명을 완성시켜야 하는데 자꾸 미적대다가 을미년(1895)까지 넘어가면 금방 병신년(1896)이 되어서 실패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바로 동학군의 장군 김개남이 지은 것이다. 본래 이름이 김기범이었는데 ‘남쪽 조선을 개벽한다’는 뜻의 개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래서 농민군들은 그를 개남장군이라고 불렀다.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수천군사 어디 두고 짚둥우리가 웬 말이냐”
을미년 12월에 초록바위로 짚둥우리에 씌워져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전주 백성들이 부른 탄식의 노래이다.
전주 덕진공원에 가면 동학혁명 삼장군(전봉준,손화중,김개남)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김개남 장군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전주 백성의 절규가 귓전을 돈다.
“척왜척화 척왜척화 외치던
그 많던 동학의 군사들 어디 두고
짚둥우리가 웬 말이더냐.
지금도 전주를 지키는 풍남문아,
북으로 흐르는 전주천 푸른 강물아,
너희는 알기나 하느냐?
완산칠봉 곤지봉 초록바위에
꽃들이 피고 지며 한 숨 짓고 있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