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부지는 ‘哲不知 혹은 節不知’의 뜻 말일 것이다. ‘총명하지 못한 사람, 혹은 때를 모르는 사람’의 뜻인데, 아무래도 ‘제 철(때)을 모르는 사람’의 뜻이 더 명료할 듯싶다.
모사재천謀事在天 성사재인成事在人이라. 천시인사天時人事라 했으니, 때는 하늘의 시간이 짓고, 사람은 그 때를 알아 일을 성사하는 법. 그 때를 아는 법수가 바로 명리命理요, 운명학의 요체다.
명命은 체體, 운運은 용用. 명命은 뿌리, 운運은 천변만화하는 꽃가지이다. 명命은 타고난 자동차, 운運은 그 자동차가 달리는 길과 같다. 명은 물려받은 자동차와 같으니, 일생을 타고 살아야 할 정해진 자동차랄까.
그러니 팔자를 척 보면, 소위 명 팔자에서 그 자동차가 그랜저급인지, 소나타급인지, 티코급인지를 금방 가늠하게 된다.
물론 자동차가 어디 승용차만 있는가. 물류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도 있고, 각양의 용도에 따라 차종도 다양하다. 비유컨대 그렇다는 것이지, 실로 운명의 차종이야 말로 얼마나 다양하겠는가마는.
한 번 타고 나온 차는 바꿔 탈 수 없다는 것이 명리의 기본 입장이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생을 타고 가야 할 자동차와 같으니, 그 命 팔자는 다분히 숙명론적이다. 다만 그 자동차가 달리는 길이 있음이니, 그것이 곧 운명론의 運 팔자다.
굽이굽이요, 산전수전의 인생길. 즉, 타고난 자동차가 한 생애를 달리는 길이 있음이다. 운명의 사계절을 말한다. 이름 하여 運 팔자다.
그 운 팔자는 끊임없이 변하는 한 생애의 길이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이 도인道人. 그 길을 가르쳐 주는 스승은 도사道師이다. 1년을 하루 일진으로 본다면, 10년을 한 절기로 삼고, 30년을 한 계절로 삼는 운(때)을 말한다.
즉, 운명이 맞이하는 한 생애의 주기를 운 팔자라 말한다. 명리학은 이를 대운大運이라 하여, 명 팔자와 짝을 이루는 운 팔자로서, 그 운명의 때를 가늠하는 것이 명리학이다.
인생 4계절의 출발은 각양각색이다. 일찍 봄을 맞이하면 거개 초년 운이 좋다. 좋은 부모와 안태한 가정환경에서 승승장구한 학업운을 만난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년·월·일·시의 사주 중에 대체로 년주와 월주에 좋은 기운의 팔자 정보가 놓여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흔히 조상 음덕을 논하고, 좋은 가문에 태어났음을 유추하는 경우다.
초년에 혹한의 겨울을 만나는 상황은 반대다. 일찍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학운마저 따르지 않고, 매사가 힘겨운 시절을 보낸다.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운명은 명 팔자의 격조가 높은 경우다. 명 팔자마저 나쁘면, 일찍이 비틀고 꼬이는 비행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모두가 ‘운’의 작난作亂인 것을. 잘남의 교만을 경계하고, 못남의 멸시를 삼가 할 것. 모두가 한 때려니, 그 운의 작난에 놀아나지 말고 중용지덕의 인품을 잘 지켜갈 일이다.
‘운運’-돌고 돌아 ‘돌 운’이다. 그 길이니 ‘길 운’이다. 인생 사계절의 때를 말한다. 바로 그 운을 알고자 하고, 그 때를 알아 저의 인생 농사를 잘 경작하자는 데서 사람들은 명리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또한 명보다 운을 더 앞세워 말하는 까닭에 ‘운명’이다. 숙명론이 아닌 운명론이다. 다분히 팔자를 고쳐보자는 운명론에 명리학의 본뜻이 있음이다. 즉, 타고난 자동차는 못 바꿔도 자동차가 달리는 길을 운용하는 삶의 주인이 되어보자는데, 명리학의 대의大義를 부여한다.
고급형 그렌저를 타고서도 그 때를 못 만나면 괴롭다. 고급차가 험악한 길을 달리는 형국이다. 시절이 자신을 외면하니 세상이 원망스럽다. 차라리 힘 좋은 4륜구동의 짐차보다 못한 상황이다.
소형차인들 어떠랴. 탄탄대로를 달리는 운전자는 행복하다. 운 팔자가 좋은 경우다.
집현전 학자가 이름을 지어준 조선의 시습 선생. 성군 세종이 무릎에 앉혀 해동의 공자로 키우겠노라 약조했던 5세 신동 매월당.
당대의 세도가 한명회를 꾸짖고, 시해만 거두어도 삼족을 멸한다는 시대의 칼날에 마주서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한 시대의 풍운아. 그도 시운時運이 외면하니 어찌하랴.
시대의 아웃사이더로, 주유천하의 광인狂人으로 한 생을 마감할 수밖에. 틀림없이 운 팔자가 사나웠을 것이다.
한 때 여의도 권력의 중심에서 입심을 발휘했던 모씨. 경인년의 일이었다. 낙향하여 그 위세로 전라도 지자체장 선거전에 출사표를 내밀었다.
하지만 선거전도 못 나서고 하차해야만 했다.
운 팔자가 나쁜 탓이다. 지인이 명문관주命問關主에게 성패를 물어 왔을 때는 이미 출정의 닻을 올린 뒤였다. 헛물 뒤의 허탈함이 눈에 보이는 상황인데도 답변이 참 난처했다.
성패의 결론은 내려주었으나, 그 권세욕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상당한 경제력과 정력을 낭비하고 명예마저 실추한 뒤, 그나마 중도 포기라도 했음을 다행으로 여긴 경우였다.
그러나 시의회 초선의 모씨 경우는 달랐다. 명문관주를 찾아왔을 때는 출마 선거구 분할로 출정에 낙담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운 팔자를 살펴본 뒤, 이내 ‘당선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로 확신을 적어 건네주었다. 물론 본인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개표 결과는 전체 시의회 1등 당선이었다.
개표 다음날, 내외가 이른 아침 당선 인사를 다녀가는 예의를 보여주었다. 물론 명문관주의 추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눈치였다.
명문관주는 그분께 무엇보다 명 팔자의 품격에 신뢰가 깊으니, 부디 시정 발전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또 향후 그 관운이 일취월장 할 것이니, 더욱 유권자의 신망을 얻는데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는 축하 인사를 마주 건넸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했던가. 타짜도 운 좋은 하수를 못 당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운이 지배하는 현실 작용력이 크다. 옛말에 아무리 불운해도 삼 세 번은 기회가 있다 했다.
그러니 삶이 힘겹고 팍팍해도 늘 각성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어쩌다 한 번씩 오는 좋은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세옹지마世翁之馬다. 메뚜기도 한 철이고. 그 철을 아는 자는 삶이 담대하고 여유롭다. 위수 강가에서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왕상이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았던 태공망의 여유로움이 바로 그것이다.
‘철節’도 모르고 날뛰는 ‘부지不知’를 경계한다. 그야말로 운명에 끌려 사는 철부지哲不知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