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닮 金 鉉 洙>
‘나’는 ‘생명’입니다. ‘生=살아있는’+‘命=목숨’.........이 곧 ‘나’입니다. 그 목숨이 살아가는 이치를 ‘명命+리理’라고 합니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니 ‘명리학命理學’이라고 합니다.
그 목숨은 ‘명’이고, 그 목숨이 가는 길은 ‘운’입니다. 이름 하여 ‘운명’입니다. ‘명리학’을 ‘운명학’이라 부르는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명리’는 한 사람(생명)의 ‘운명’을 실존 그대로 논거하게 됩니다. 관념적 지식론이 아니고, 보편적 현실론으로 ‘개인’의 ‘명命+운運’ 전체를 들여다보기 합니다.
우선 ‘명命’은 하늘의 준엄한 명령과도 같습니다. 천명天命이라 하여, 거스를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빈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수성가해야 할 명命이 있는가 하면, 부귀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두터운 덕을 입는 명命이 정해져 타고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정도는 정통한 명리가의 눈으로 단박에 읽어냅니다.
정초에 명문관을 다녀간 L여사의 경우입니다.
‘동지 섣달 황량한 들판에 우뚝 선 노송이 매서운 눈보라를 이기고 있군요.’팔자를 펼치면서 던진 명리가의 첫마디였습니다. 소위 자연철학이라 하여, 자연의 물상에 빗대어 명리를 설說하는 통변通辯방식의 경계입니다.
섣달-축월 목성의 갑목甲木 일주가 년,월 간에 임壬,계癸 수水를 두고 있으니, 동토에 외로이 서서 눈보라를 이기고 있는 운명지상運命之像이라 그리 표현하게 됩니다.
명리는 년,월의 운명 정보가 조상과 부모 형제로 해석되어지니, L여사의 명命은 애초에 조상, 부모 형제 덕이 박복하다는 것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섣달 큰 나무가 년,월 간에서 눈보라를 맞고 있으니, L여사는 늘 부모 형제로 인한 매서움을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타고난 업연을 읽어내는 순간, L여사의 눈가가 벌써 젖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천명은 천리天理이며, 천도天道인지라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하늘의 이치는 인정에 치우침이 없는 서릿발과 같으니, 이름 하여 ‘내 팔자 탓’임을 받아들이자고 명리가는 역설하게 됩니다.
여명女命이면서도 남명男命과 같은 기세를 타고난 L여사. 실제로 목성木星의 천성적 어진(仁) 마음이 부모 형제를 외면하지도 못하고, 친정 부모 형제로부터 받는 삶의 무게는, L여사에게 마음의 한으로 맺혀 곧 애써 참는 눈물로 풀려 나왔던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것이 그 명운을 몰라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겠으나, 명문관 내담자는 명리가의 멘토링을 통해 그 타고난 업연을 곧 받아들이게 되는 지혜의 힘을 얻자는데 상담의 뜻이 있습니다.
명리가는 L여사의 눈물에서 업연이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로부터 숙명의 명命을 앞세워 명운命運이라 말하지 않고, 운運을 앞세워 운명運命이라고 말하는,....그 운運에서 소위 운명학-그 명리학의 핵심을 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 命명과 운運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투데이안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