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타령은 영화의 주된 메뉴 중 하나이다. 남여 주연배우의 정형화라는 영화계의 오랜 습관을 굳이 거명하지 않더라도, 2시간 남짓 전개되는 드라마의 주된 추진력 또한 주요 배역들 사이의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관계의 역동성에 의해 의례 제공된다. 그리고 그 애정 라인은 주로 젊고 매력적인 남여 사이의 가장 활기차고 매력적인 활동상황에 맞추어져서 설정되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스크린 상에서 접할 기회가 그새 비교적 잦았던 것이리라. 그런 한편 로맨틱 코미디물의 경우,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그렇고 그런 상황 속에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는 일들을 반복하는 사이, 다양한 볼거리와 역동적인 움직임 그리고 짜릿한 자극을 쫓는 관객들의 욕구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이어서, 어지간한 인물의 매력이나 기발한 상황 설정 혹은 감칠맛 나는 대사발로는 영화판에서 주목 받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연이는 멜로성 드라마의 부진 이후 간만에 시장에 등장한 또하나의 충무로발 연애담인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를 어떻게 극복하고 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영화는 ‘시라노’라는 순애보의 고전으로부터 키워드를 찾아내고 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검술능력에도 불구하고 사랑놀음에서는 ‘쥐약’인 추한 외모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록산느’에게 보내는 잘생긴 부하의 연애 편지를 대필하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표현하며 심화시킨다는 어느 프랑스 귀족의 이름이 바로 ‘시라노’이며, 이를 기초로 한 연극과 영화 등이 이미 잘 확립되어 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바로 이 애잔한 로맨스의 주인공 이름 옆에 현대 감각에 맞는 산업적 기획의 컨셉을 병치시키고 있다. 연애기술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보다 극적으로 그러나 온당하게 증폭시켜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연애상황 발전의 전 과정을 철저히 기획하고 조작해주는 사업을 돈 두둑이 받고 시행하는 영리집단의 이름이 ‘시라노’이다. 그에 따라 시라노 백작의 연애편지 대필 활동은, 타겟의 취향 및 상황의 분석과 동선 교차 작전의 설계 및 파우어 대사의 제공 등 과학적인 분석과 치밀한 기획에 기반한 종합예술의 수행으로 대체되고 있다. 연애조작단으로서 시라노에이전시의 활약을 중계하는 영화의 초반은, 바로 이런 고전적 개념의 활기찬 재활용으로서 경쾌하고도 멋들어지게 진행된다. ‘코미디’의 훌륭한 시연으로 손색이 없다.
이제 ‘로맨틱’의 차례이다. 연애조작 활동을 맛깔스럽게 전시하던 영화는 이내 그 ‘시라노’가 상징하는 심각한 주제로 진입하게 된다. (제목이 그러하니) 당연하게도 이 시라노에이전시의 다음 타겟은 이 팀 대표인 ‘병훈’의 아직 잊혀지지 않은 과거의 사랑 ‘희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이 기획의 의뢰인인 ‘상용’의 연애를 성공시켜야 하는 직업적 사명과 자신의 연애를 완성하기 위해 그 작업을 망치고자 하는 개인적 유혹 사이에서 번민하는 ‘병훈’과, 과욕스러울 정도로 성급하게 집중하여 시라노에이전시의 대사를 무시하고 ‘애드립’을 남발하면서도 신비스런 여인을 향한 순애보로 일관하는 ‘상용’, 그리고 두 남자로부터의 혼란스런 제안들에 둘러싸여 흔들리다 연애조작단의 기획이 실어 나르는 남자의 진심에 순응하는 ‘희중’을 중심으로 저절로 풀려나가게 되었다.
이 시라노 플롯이 가능하게 하는 연애담은 결국 ‘상용’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 현재형으로 타오르고 있는 자신의 ‘희중’에 대한 애정의 마음을 ‘병훈’이 자신이 개발한 연애조작의 매뉴얼에 실어 아주 효과적으로 ‘상용’에게 전달하는 역설에서 정점을 이루며, 이 대목에서 영화는 ‘고전 시라노’의 감동을 재연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사랑이라고 하는 모호하면서도 집중적인 감정 현상을 표현하고 실현해냄에 있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희비를,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연애조작활동이라는 간접적이면서도 복잡한 방식이 일으킬 수 있는 경쾌한 웃음과 그리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시라노의 아이러니 (자신의 진심을 실어 동일 대상에 대한 타인의 애정을 실현시킴)의 비극성을 재치있게 묘사하면서, 세련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올 가을 관객은 애잔한 사랑이야기의 고전을 켱쾌한 톤으로 재현하면서도 그 정수를 유지하는 ‘로맨틱 코미디’ 소품 하나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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