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기념일이 끼어 있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대립의 실험을 전지구적으로 체험했던 이미 역사의 시간. 그 시기를 유달리도 굴곡진 경험으로 일찌감치 겪어낸 우리에게 있어, 국가 단위의 유일한 전쟁이었던 ‘한국전쟁’은 아직도 그 울림이 크기만 하다.
그러한 연유로 이 역사적 사건은 충무로 기획 테마 중 여전히 우선 순위를 점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제작비 150억원의 묵직한 기획으로 재현되어 우리에게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포화 속으로』에서의 한국전쟁은 매우 구체적인 맥락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달, 파죽지세로 밀려온 공산군에 대항하기 위해 남은 국군 병력이 낙동간 전선에 집결해야 했고 포항을 지키던 부대도 떠나게 되면서, 총 한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채 이 지역을 지키라고 남겨진 71명의 학도병이 겪어야 하는 전쟁의 비극적인 모습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다.
여기에 낙동강 집결 명령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을 거쳐 부산을 먼저 점령하려는 북한군 유격대의 진격이 있게 되면서 그들의 비극은 완성된다.
비극적 결말을 내장하고 있는 이러한 이야기로 애초부터 통쾌한 액션에 기초한 반공 활극을 포기해야 했던 제작진이 보수주의 정권 하 뉴라이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채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전략은, 공산당의 만행에 대한 고발이었을 것이리라.
그런데 영화는 현명하게도 그런 명시적인 반공을 캐치플레이스로 내걸지 않는다.
영화는 국제적인 각축전이었던 이 복잡한 성격의 전쟁이 가질 수 있는 국제정치적인 혹은 이념적인 배경과 논란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과 카메라는 우리 편의 내부에 위치에 있고, 타자화된 인민군은 그저 타도되어야 할 ‘빨갱이들’로만 간단히 지적되고 만다.
그리하여 그들은 실감나는 전투 씬을 완성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소도구들로 남으면서, 영화는 특별히 ‘한국전쟁’이 아니어도 좋을, 절대절명의 위기의 상황 속에서 단순했던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가에 대한 기록으로 남기를 자청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대중의 정서와 감정의 자연스런 흐름에 잘 맞추어져 조율되고 있다.
격렬한 전투 장면의 생동감 있는 묘사로 초반 관객의 주의를 잡아두는데 성공한 영화는, 정규부대가 철수한 후 포항여중 교사에 모여 군인인지 학생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장한 채 적을 기다리는 학도병들간의 인간적 교류와 집단적 알력을 묘사하는데 일단 주력한다.
그러는 사이 일반적인 학교 관련 조폭 영화의 관습을 반복하면서 안정된 기조를 유지해 나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산발적인 유우머와 잔잔한 이야기의 재미가 구사되면서 내러티브의 디테일 구축과 후반 비극성의 배가를 위한 정지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그리하여 절실히 살아 움직이던 등장인물들이 인민군의 침투와 함께 희생되어가는 상황 그 자체는 슬픔과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도록 영화는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어머니와의 일기식 대화 형식으로, 자신과 동료 그리고 자신이 마주쳤던 인민군의 인간적인 운명 등을 포함한 전쟁상황 전반에 대한 나날의 성찰을 실행하는 주인공을 통하여, 영화는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를 ‘평이한’ 방식으로 전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포화 속으로』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전쟁의 포화 속으로 열렬히 뛰어드는 젊고 순순한 영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임박한 공격 개시에 대한 인민군 유격대장의 개별적이고도 특별한 경고라는 호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결사항전을 택하고 장렬히 그것을 수행해낸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영화는 절정 국면에서 주인공 4명의 상상키 어려운 옥상전투 회합을 기어이 실현시키는 인위적인 조작의 감행을 통하여, 스스로 B급 대중문화 상품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이쯤에서 관객은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대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상황을 스스로 거부하지 않았던 젊은 영혼들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설득하려 할 뿐이다.
그 대의가 인간사의 보편적인 미덕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그를 지키고자하는 ‘응전의 태도’는 반드시 기억되고 찬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비록 필자는 이 영화의 상업주의적 뻔뻔함과 주제의 모호함에 대해 마땅히 예민해야 했지만, 포화 속으로 뛰어 들어갔던 영화 속 우리의 학도병들의 영혼 속에서, 그 30년 후 80년 광주민주항쟁 시 그 새벽 투항의 권유를 물리치고 도청 청사에서 계엄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불의에 ‘응전하고’ 있었던 무모했던 열혈 청년들을 어느 새 발견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투데이안 객원논설위원
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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