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의 대가로 생활은 늘 빈한했지만 그 어떤 스펙이나 훈장보다 자랑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제2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청렴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며, 목숨처럼 여기고 살아온 정헌율 익산시장(59).

함열읍장과 낭산면장을 지낸 선친 때부터 대를 이어 33년 공직생활 동안 청백리 외길만을 걸어온 그는 지난해 보궐선거로 익산시장에 당선됐다.

집에 월급 한 푼 가져다주지 않아 ‘나쁜 가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청념했던 선친이 청렴과 봉사로 성실하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을 그는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왔다.

그는 취임후 직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같은 강도 높은 청렴정책을 도입해 공조직 쇄신을 강행했다.

청념을 유전 받은 그는 익산시장 취임 이후에도 10여년 전에 구입한 옷이 해질때까지 입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다. 

지난해 선거 당시 신고 다녔던 신발 역시 메이커 없는 값싼 구두에 불과할 정도다.

평범한 셀러리맨보다 못한 생활이 화려한 공직 경력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그가 가진 전부다.

그런 그가 최근 예기치 못한 변을 당했다.

지난 7월 석산 업자에게 장학금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청념 인생에 크나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됐지만 경찰의 무리한 짜맞추기식 수사와 수많은 언론보도가 자신은 물론 가족, 익산시민, 전북도민, 불특정 다수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셈이 됐다.

정 시장은 이번 경찰의 수사에 대해 자체 감찰과 국가인권위에 제소했다.

단 한번도 조사하지 않고 피의자로 소환한 것은 익산시장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한 수사적폐였기 때문이다.

익산 모 언론사도 무고죄로 형사고발했다. 정제되지 않은 보도로 수많은 언론들이 포탈사이트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익산시공무원노동조합도 성명을 내고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익산의 인재양성의 요람인 장학재단의 기반을 흔들었다며 분개했다.

자발적 장학금 모금의 기부문화 마져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정 시장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도 남을 헐뜯고 음해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실감했다”며 “거짓과 음해로 억울한 희생을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 시장은 자신이 겪은 상처보다 익산시민이 당한 불명예를 어떻게 치유할지 고민 중이다.

그래선지 요즘 현장행정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각종 민원도 꼼꼼히 챙기며 관리하고 있다.

직접 혹은 간접(전화통화)으로 익산시민들의 고충이 해결됐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황당한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그동안 낭비된 행정력을 청년 일자리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준공을 앞둔 국가식품클러스터와 산업단지 분양은 물론 서민생활을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국체전과 전국장애인체전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일을 거울삼아 청렴도 향상에 더욱 박차를 가해 투명한 공직문화, 신뢰받는 공직자 상을 정립키로 했다.

정 시장은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각오로 익산시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로 삼겠다"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이 성장 통이 돼 정의와 원칙이 뿌리 내리고, 상생의 문화가 아름답게 꽃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정헌율 익산시장은 1980년 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세제국장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전북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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