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동부보훈지청 송민주

-전북동부보훈지청 보상과 송민주

매년 3․1절이 되면 유관순 누나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신철이라는 사람이다. 자료에 의하면 신철이란 사람은 일본말을 일본사람 뺨치게 잘 하면서 또 옷은 항상 한복을 입고 다녔으며 1919년 당시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로서, 우리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괴롭힌 민족의 반역자였다.

어찌나 수상한 조선인을 색출해 내는 데에 귀신이라 그의 별명은 일본의 사냥개 1호였다.

이 신철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2월 26일(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밤 천도교 보성사에 나타나 독립선언문 인쇄현장을 보고 만다.

이 소식은 즉각 거사를 준비 중이던 핵심인사들에게 전해졌다. 천도교 간부로 33인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최린은 신철과 은밀하게 마주 앉았다.

“당신은 이제까지 우리 동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소.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우리 민족을 위해서 큰일을 해주시오. 당신만 입을 다물어 준다면 우리나라는 머지 않아 독립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면 역사는 신철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기억할 것이오.”

최린은 당시 돈으로는 거금인 5,000원을 신철 앞에 내 높으며 우리 민족 전체의 미래가 그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호소한다. 최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철은 한 순간 자리를 박차고 사라졌다.

3월 3일로 계획했던 독립선언은 서둘러 3월1일에 앞당겨 행해졌다. 3․1만세운동이 있은지 두 달 후, 신철은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어쨌든 돈을 받고 입을 다물었더라도, 악질 친일 형사가 식민지시대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투쟁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도 결국엔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 민족, 조선인이라는 양심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런 그를 회유한 최린이 민족대표 33인 중 대표적인 변절자라는 사실 또한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신철. 그는 결코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롭게 살다가 변절한 사람들과 일본의 앞잡이로 살다 의롭게 죽은 사람을 후세의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다시 위기에 봉착한 우리 사회를 보면서 제98회 3.1절을 맞이하여 그 날의 정신을 되살려 분열과 갈등의 벽을 허물고 민족화합과 통일의 시대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 개인의 평안과 출세만을 생각지 않고 민족을 더 나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절개를 추모하는 3․1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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