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직장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한번쯤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음식점 경영일 것이다.
특히, 요즘은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쉐프(요리사)들이 자주 등장해 음식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음식점 창업이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보는 것 처럼 대박과 연결되기란 만만치 않다.
음식점은 자식을 낳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식이 하루아침에 성장하지 않듯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함없는 사랑과 정성을 쏟을 때 명품 음식점으로 태어나게 된다.
‘음식보다 감동을 팔아라’는 23년 동안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터득한 성공 노하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음식점을 하게 된 동기에서부터 신지식인상을 받기까지 과정은 물론 음식점 경영의 노하우 등 음식점을 꿈꾸는 창업가들에게 지침서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 100대 음식점 가운데 하나인 <청학동 버섯전골>을 비롯해 <월남쌈 전문점 농장집>, <전주한옥마을 청춘시장>, <낙지엔 등갈비>, <흙뿌리 홍삼> 등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삶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결혼부터 시작한 야채장사...유산과 함께 새로운 시작
“배추가 금방 밭에서 왔어요. 무두 싱싱합니다”
그는 23년 전 야채장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새벽 야채시장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야채장수의 목소리가 그에게는 새로운 삶에 희망을 심어준 셈이다.
그의 원래 꿈은 유치원 원장이다. 하지만 야채장사를 하기 1년전 그는 결혼사고 싶은 남자에게 결혼조건으로 보험회사 소장이라는 허울 좋은 회사 그만두고 야채장사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만한 배짱이 있는 남자라면 평생 함께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은 승용차 팔아 트럭을 샀고, 대출금 받아 방한 칸 얻어 신혼을 시작키로 맘먹었다.
그들에게 행운이 온 것은 결혼식과 함께였다. 시댁의 먼 친척뻘 되는 분이 결혼식에 참석했다 우연히 둘의 얘기를 듣고 대형마트 야채부를 소개했다.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야채장사부터 시작한 청학동 버섯전골 김순이(53)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
김대표의 야채 매장은 재래시장 안에 있는 2층 구석에 위치해 손님이 직접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였다.
하지만 바쁜 주부들을 위해 야채를 다듬어 팔았고, 청국장도 시골집에서 직접 만들어 팔면서 인기 품목이 됐다.
하루는 남편이 배추 한 트럭을 밭에서 뽑아왔다. 남편이 트럭위에서 배추 한 포기씩을 던지만 그는 밑에서 배추를 온몸으로 받아 쌓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배추를 받아 일을 마친 그날 밤 갑자기 하혈을 했고 병원에서 유산이라고 말했다. 임신된 줄도 모르고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우리 음식점 해요'...청학동 버섯전골의 탄생
험한 야채장사를 한지 1년. 매장에 버섯을 납품하는 사장 한분이 군산에 버섯 10박스씩을 재료로 하는 음식점이 있다고 했다.
매장에서 하루 2박스 팔면 잘 파는 건데 10박스를 재료로 사용한 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군산 금강 하구 댐에 있다는 음식점을 당장 찾아가 맛을 본 뒤 그는 결심했다.
“우리 음식점 해요. 이 정도 맛 가지고 손님이 낳을 정도면 나는 더 맛있게 할수 있어요.”
1년 3개월 모은 돈 3,80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음식점을 차리기 위해 6개월 은행에 예금을 하면 5배 대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5개 은행에 적금을 넣기 시작했다.
음식점 자리를 보러 다니던 어느 날, 남편은 좋은 자리가 났다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소개했다.
그리고 6개월 후 모아놓은 자금과 대출금을 받아 청학동 버섯전골 음식점을 짓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텅빈벌판에 음식점을 짓고 있으니 완전 미친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수록 오기가 발동했고, 배짱도 생겼다.

그의 음식철학은 남다르다. 그는 음식을 만들 때 마음을 심는 기도를 한다. 그래선지 요리할 때 그에게 잡념이 없이 고요하다.
가슴으로 사랑을 하듯이 음식도 가슴으로 만들어야 음식을 먹는 사람과 교감이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청학동이 오픈하고 2년마다 주기적으로 방송에 출연했다. 방송이 끝나고 전국에서 문의가 쇄도했다.
가계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어디서 그렇게 몰리는지 주차장을 꽉 채우면서 몰려왔다. 대박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필 이런 곳에...월남쌈 전문 농장집의 탄생
“귀신 나올 것 같은데 하필이면 이곳에 음식점을 해요?”
김 회장은 청학동을 운영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소고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황소한우 전문점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하지만 논 가운데 달랑 2층만 있는 집으로 장사가 되지 않아 주인이 4번이나 바뀐 곳이다.
아무튼 눈에 잘 띄고 처음에는 잘되지만 나중에는 안 된다는 곳에 제2호 음식전문점 ‘농장집’이 탄생했다.
황소는 상식적으로 구워서 먹기엔 질겨 적합하지 않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40일 숙성 시켜 먹으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2만 4000원짜리 소고기가 9,900원, 오픈 첫날 소주 한병에 100원 이벤트 등으로 북적이더니 숙성된 음식이 떨어지면 그날은 무조건 문을 닫았던 1년이 금세 지나갔다.

그런데 터의 영향일까? 어김없이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년을 그렇게 끌고 가다보니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늦기전에 빨리 가게를 넘기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많았던 남자 고객과는 대조적으로 여성 고객 쪽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여성들이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 여성들의 쉼터를 마련 키로 맘먹었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야채위주의 월남쌈 음식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여성 입맛에 맞는 과일소스를 개발하고 고깃집 분위기에서 레스토랑 분위기가 되도록 커튼을 달고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벽면에서 성공한 여성 자도자 액자에 창가에는 가을을 느낄수 있는 코스모스 심어 볼거리를 제공했다.
두 달도 되지 않아 여성고객들로 북적였고. 현재도 월남쌈 마니아들로 좌석을 가득매우고 있다.
▲갑작스런 남편과의 이별...연세대 외식환경대학원 입학
남편이 대장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등졌다. 1년을 방황했다. 정신을 차리자 막막한 현실이 앞을 가렸다.
용기를 내봤지만 5년동안의 투병에만 머문 그의 생각은 이미 사회와 동떨어졌다.
그러던 그가 남편이 가고자 했던 길을 택하기로 했다. 남편이 연세대 외식환경대학원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 그에게는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라 생각했다.
대학원 과정은 대부분 인맥 쌓기라고 하지만 그는 달랐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집안의 가장역할까지 해야 하는 그의 제3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의 배움은 현장으로 접목됐고, 매장분위기, 도배, 화장실 단장 등 구석구석 청결에 최선을 다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도 개선하기 시작했다. 광고도 시작했다.
차츰 손님들의 발길이 매장으로 향했고, 1년 넘게 광고에 집중하다보니 예전의 문전성시를 돼 찾았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전주 모대학에서 외식산업과에 등록해 배움과 함께 삶의 넓이도 키우고 있다.
배움이 그에게는 멈추는 생각과 좁아지는 세상에 대한 투자였고,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신지식인상 수상...흙뿌리 홍삼과의 만남
언제부턴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 됐다.
음식점 두 개를 운영하는데 따른 매출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무 제약받지 않으며 매출의 폭을 넓혀 보고 싶었다.
학교에서 태국으로 해외연수를 갈 당시 같은 룸에 있는 언니가 홍삼제품을 먹으면 밤에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못 마시는 소주를 몇 잔 마셨다.
그즈음 폐경이었고 병원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권유했다. 하지만 이후 몸은 정상이었고 불편한 점이 없었다. 단지 홍삼을 먹었을 뿐이다.
그는 이정도면 폐경여성 등 여성 건강을 위한 홍삼전문점도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본격적인 홍보 연구에 들어갔으며, 기존 홍삼 값의 반값으로도 음식점보다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값홍삼의 대중화는 그의 목표가 됐다.
음식 쉽게 팔 듯 가볍게 생각했지만 상품 하나하나 만들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상품허가 절차 역시 까다로워 여러번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상품만 나오면 가격 경쟁력이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오픈과 동시에 지인들 힘으로 매출이 급증했지만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개점 휴업상태였다.
매장 직원들의 얼굴은 울상이었지만 그는 억지로 팔려고 애쓰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삼 농축액 10병이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왔다.
병원에서 항암제 투약을 하고 있는 환자 가운데 흙뿌리 홍삼을 먹고 있는 환자가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수소문 끝에 주변 환자들이 대량 주문을 한 것이다.
성분이 좋고 반값이어도 사람들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새벽부터 도로변에 나가 홍보를 시작했다. 등산로에서의 시음회, 박람회 투어 등 4년 넘게 홍보를 하다보니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고가의 홍삼을 대중화시켜 국민건강에 기여했다며 신지식인상을 받았다.
흙뿌리가 뿌리를 내자 경찰서에서 원산지 표시가 잘못됐다며 경쟁사로부터 신고가 들어와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더욱이 본사가 원산지 진안이 아니고 전주에 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진안’이라는 지명을 빼야 했다.
그는 그간 고생한 것이 갑자기 떠오르며 눈물이 쏟아졌다.
두 개의 음식점을 경영하며 번 돈을 5년 가까이 ‘흙뿌리 진안홍삼’ 홍보에 쏟아 부었지만 하루아침에 ’진안홍삼‘ 브랜드를 내줘야 했다.
하지만 그는 흙 뿌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브랜드 등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반드시 효자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흙에서 뽑아 그대로 고객에게 전하겠다며 지은 이름(흙뿌리)처럼 그는 홍삼의 순수함을 고집하고 있다.
▲노후가 더 아름다운 창업...차별화된 전략이 성공 열쇠
음식점 하나차리는 것은 특별한 자격 없이도 창업할수 있다. 그래선지 한평생 직장생활을 마친 퇴직자들이 쉽게 덤비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음식점 차리는 것만큼 실패도 많다.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려 보여주기 위한 음식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규모는 작지만 대한민국 최초로 따뜻한 음식점을 만든다든가, 청국장 하나만큼은 최고로 만든다든가, 나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차별화된 전략으로 고객에게 열정과 정성을 다해 다가설 때 제2의 삶의 기회가 열리게 된다.

김순이 청학동 버섯전골 대표는 "사람이 자기 얼굴을 가지고 살지만 사실 얼굴은 남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얼굴은 본인 자신이 보는 것보다 남이 보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음식을 날마다 만들어 파는 것처럼 새로운 기운의 기분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음식 이상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담이 음식점 경영에 힘이 된다면 이책의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며 "퇴직자든 창업자든 제2의 삶이 훨씬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