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집, 중국집, 감자탕집….

평범치 않은 이별장소다.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단다. 그런데 이 '이별남녀'를 바라보면 역설적이게도 웃음이 빵빵 터진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이별 상황과 정면 배치되는 말과 행동이 흘러나온다. "삼겹살 주세요, 생고기로 주세요", "아직 뒤집지 마세요", "지금 먹어도 돼요?", "사이다로 주세요"….

KBS 2TV '개그콘서트-생활의 발견'이 방송 3회만에 호응을 얻고 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상황에 처한 여성을 맡은 신보라(24)도 부쩍 바빠졌다. "지지난주에는 삼겹살집에서 세끼정도 먹으면서 손님들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직접 관찰했구요. 지난주에는 리허설을 할 때마다 자장면을 시켜먹으면서 할 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며칠 전에는 감자탕집도 다녀왔어요."

신보라는 '생활의 발견' 코너를 하게 되면서 TV드라마도 열심히 본다. 이별을 앞둔 남녀관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다. 남자친구가 월세가 없어 쫓겨나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선을 보는 등 극적인 상황 연출에 도움이 된다.

"아이디어의 틀은 김병만 선배님이 주셨어요. 이런 콘셉트에 진지한 연기를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너 진지한 연기 잘 하잖아, 또 진지한 연기 잘하는 애 있잖아, 준근이 붙여줄게'라고 말하시면서 준근 선배를 붙여주셨어요. 코너 검사를 맡는데 감독님, 작가님, 선배님들이 너무 재미있게 보시는 거에요. 반응이 너무 좋아서 조금 놀랐어요. 그 다음주에 바로 녹화에 들어갔죠."

웃음 포인트에서 진지한 연기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신보라는 연기 몰입의 공신으로 송준근(31)을 꼽았다. "준근 선배님의 눈이 아주 언뜻 보면 아랍계 눈이에요. 선배님을 보고 연기하면 더 진지하게 되고 몰입하게 돼요. 몰입이 되게 잘 되게 하는 눈이라고나 할까요? 연기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빠져들고…. 사랑하는 감정은 없지만 슬픈 감정은 나오는 것 같아요. 하하."

지난해 KBS 개그맨으로 데뷔한 신보라는 '개그콘서트-슈퍼스타 KBS'에서 가수 아이유(18)의 3단고음을 3단비명으로 패러디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파트너와 함께 한 코너를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기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신보라는 '개그콘서트'의 선배 개그맨과 제작진에게 고마워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연기하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고, 반응도 좋아서 신나게 하고 있어요. '슈퍼스타 KBS'는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지만 비주얼 중심이어서 한계가 많이 있었거든요. 제작진과 선배님들이 없이 저 혼자 했다면 지금까지 절대 못 왔을 거에요. 개그가 진짜 혼자하는 게 아니더라구요."

'개그콘서트'의 '막내' 신보라도 지난달 후배가 들어오면서 선배가 됐다. 원래 개그맨이 꿈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친구, 선생님들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고향이 거제도여서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열심히 사는 모든 순간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라는 게 신보라의 지론이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입학한 후 4학년까지 그런 생각으로 살았어요. 고3때 예체능으로 전과해 잠깐 연극을 하기는 했는데 입시준비를 하기엔 열악하더라구요. 다시 공부를 해서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방송에 운명적 끌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4학년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신보라는 개그맨 시험을 치렀고, 개그우먼의 길을 걷게 됐다. 주위 사람들이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행복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의 반대에 부딪친 신보라는 합격 후에야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했다. 반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부모는 오히려 좋아하면서 '천천히 해라, 급하게 할 것 없다'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신보라는 재주꾼이다.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남자, 그리고 하모니'편 오디션에 참가해 가수 임정희(30)의 '사랑에 미치면' 등을 부르며 노래 실력을 뽐냈다.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OST '내 마음 보내요'도 불렀다. 초·중학교 시절 전교회장, 고등학교 때 전교부회장을 지낸 이력이 회자되며 '엄친딸'로 회자도 됐다.

"엄마랑 친한 딸. 항상 그렇게 말씀 드려요. 아주 평범하게 큰 탈없이 자랐거든요. 학창시절 임원은 제가 말을 잘하거나 잘나서 된 게 아니구요, 친구들이 흉내를 잘 내는 저를 편하고 만만하게 봐줘서 할 수 있었던 거에요. 노래 부르는 것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구요. 가수를 꿈꾸다 개그맨이 됐다고 아시는 분도 간혹 있는데 사실무근이에요,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거제도 섬 학생이었죠."

'엄친딸'로 불리면서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보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평생 대중 앞에서 아낌없이 펼쳐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때로 개그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고민스러워 힘들 때도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개콘'에서 열심히 할거에요. 연기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직도 많이 떨리거든요. 큐 사인이 떨어지면 오히려 나은데 시작하기 직전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너무 큰 무대여서…. 버라이어티는 얼마나 더 힘들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지만 지금은 말도 못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방향은 확실하다. 양손을 포개며 개그우먼 안영미(28), 신봉선(31)이 롤모델이라고 눈을 반짝였다. 이들이 '개콘'에 나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이번엔 어떤 것을 보여줄까, 대박이겠지'라는 기대를 품었다.

"선배들처럼 기대감을 주는 개그우먼이 되고 싶어요. 멀리 볼 때는 박미선, 이성미 선배님처럼 따뜻하면서도 친근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개그우먼이 꿈이에요. 웃음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해요. 개그자질을 천재적으로 타고난 게 아니란 걸 너무 잘 알거든요. 채워나가려고 열심히 노력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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