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인간과 귀신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려 관객들을 울린 홍콩영화 '천녀유혼'(감독 청샤오둥 程小東·제작 쉬커 徐克)이 24년만에 제작비 200억원이 투입된 리메이크작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한류처럼 당시 한국인들을 열광시키던 홍콩영화 붐의 히어로 장궈룽(張國榮·1956~2003)과 이 영화를 통해 영화 '라 붐'의 소피 마르소(45)를 밀어내고 한국 젊은 남성들의 '여신'으로 자리 잡았던 왕쭈센(王祖賢·44)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잊지 못할 명작으로 기억에 남았다.

2011년 새롭게 선보인 SF 판타지 로맨스 영화 '천녀유혼'을 미리 감상한 결과는 만족이다. 스토리면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마사 '연적하'는 흑산의 1000년 묵은 나무요괴 '목희'와 싸우다 스승과 사형을 잃는다. 동료 퇴마사 '하설풍뢰'(판샤오황 樊少皇)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희를 봉인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우 요괴 '섭소천'마저 죽여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차마 섭소천을 죽일 수 없었던 연적하는 이를 어기는 대신 섭소천이 자신에 관해 갖고 있는 기억을 가둬버린다. 그런 뒤에도 흑산을 떠나지 못하고 섭소천을 보호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런데 관원 '영채신'이 흑산에 들어가게 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돼 버린다. 영채신과 기억을 잃은 섭소천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 와중에 목희의 봉인이 풀리면서 세상에 위기가 닥친다.

목희를 처단하고 세상을 지키려는 연적하, 섭소천을 목희의 마수에서 구하려는 영채신, 연적하가 과거 연인이었던 것을 결코 떠올리지 못한 채 연적하와 대적하는 섭소천, 목희는 물론 섭소천까지도 척결하려는 하설풍뢰 등이 빚어내는 박진감 넘치면서도 애잔한 스토리가 관객들을 빠져들게 한다.

1987년작이 영채신과 섭소천의 러브스토리가 중심이었다면 2011년작은 전작에서 두 사람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조연에 불과했던 퇴마사 연적하를 주연으로 격상시켜 삼각관계로 이야기를 풀었다.

장궈룽이 연기했던 영채신은 2009년 영화 '매란방'으로 제3회 아시아영화상 신인상을 차지한 위샤오친(余少群·28), 왕쭈센이 맡았던 섭소천은 류이페이(劉亦菲·24), 우마(午馬·69)가 나왔던 연적하는 홍콩의 '신사소천왕' 중 하나인 구톈러(古天樂·41)의 몫이다. 또 악역인 목희로 관록의 훼이잉홍(惠英紅·51)이 출연한다.

여주인공 류이페이는 170㎝, 48㎏의 가녀린 몸매와 청순한 외모를 지진 중국어권 새 미녀 배우다. 2002년 드라마 '금분세가'로 데뷔했고, '천룡팔부'에서 '왕어언'으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 2008년에는 청룽(成龙·57), 리롄제(李连杰·48)와 함께 할리우드 액션 판타지 영화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에 출연, 주목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전성기 시절 왕쭈센을 능가하는 미모로 관객들의 안구를 정화해주고 있다.

반면 위샤오친의 영채신은 너무 비중이 낮은 데다 장궈룽이 보여줬던 '순정남'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 아쉽다.

연출은 지난해 '엽문2'로 홍콩 무술영화 부활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명성을 떨친 예웨이신((叶伟信·47) 감독이 맡았다. 예 감독은 "천녀유혼은 홍콩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한 영화로 사람들이 여전히 좋아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고전 중 하나다. 나 역시 천녀유혼을 보고 큰 감흥을 느꼈던 세대로 그 영화에서 받은 감성들이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특별한 작품"이라며 "한국 팬들도 좋아할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연적하의 비중을 키우고, 삼각관계를 만들지 않았다면 리메이크의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면서 "한편으로는 장궈룽이 연기한 영채신을 넘어서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마침 '천녀유혼'의 전작이 제작됐던 해에 태어난 류이페이는 "한국에 와보니 왕쭈센 선배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만나는 사람마다 왕쭈센 선배와의 연기 비교에 대해서 물어봤다"며 "소섭천을 맡아 왕쭈센 선배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도록 내 색깔을 내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류이페이는 자신과 왕쭈센의 미모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 특히 의미있다. 국내 CG업체인 '디지털 스튜디오 2L'이 영상 기술투자를 했다. 1987년 제작자 쉬커(61) 감독이 할리우드 SFX 기술을 접목시켰던 '천녀유혼'을 보며 마냥 부러워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다만 뛰어난 특수효과와 달리 소섭천의 몸체인 '여우'의 경우 너무 CG티가 나는 점은 아쉽다.

한편 '천녀유혼'은 엔딩 타이틀에 "장궈룽을 영원히 기억하며…"라는 문구를 넣고, 주제곡으로 장궈룽이 부른 원곡 '천녀유혼(倩女幽魂)'을 그대로 담는 등 장궈룽을 추모하는 동시에 장궈룽 팬심을 자극하고 있다.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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