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지도자인 김호철 감독(55)이 새 출발대에 섰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재계약에 성공한 김 감독은 예전보다 기운이 더욱 넘쳐나는 듯 했다.

2009~2010시즌 V-리그 왕좌는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돌아갔다.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현대캐피탈은 챔피언결정전 1승3패의 열세를 딛고 승부를 마지막 7차전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8일 용인의 현대캐피탈 훈련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주도권을 내준 현대캐피탈이 시리즈를 7차전 5세트까지 끌고 갈 줄 누가 알았겠느냐. 결국 졌지만 팀 컬러를 잘 보여줬고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7차전을 끝으로 현대캐피탈과의 계약이 종료된 김 감독의 거취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도력이 검증된 김 감독은 복수의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연중행사인 이탈리아행도 취소할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실제로 한 팀과는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김 감독은 끝내 현대캐피탈을 선택했다. 액수와 관계없이 자신의 요구 조건이 관철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김 감독은 "한 팀과 계약 직전까지 갔는데 막판에 틀어졌다. 돈 문제는 아니다. 계약이 지체될 때 현대캐피탈 사장님과 독대를 했다. 그 때 사장님께서 그 팀이 난색을 표한 조건에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믿고 맡겨 주셔서 고맙다"고 회상했다.

3년 재계약을 체결한 뒤에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전력 보강에 나섰다. 라이트 공격수 박철우(25)가 연봉 3억원 시대를 열며 삼성화재로 이적한 탓에 거포 영입이 절실했다.

김 감독의 선택은 문성민(24)이었다.

임시형(24)과 하경민(28. 이상 KEPCO45) 등 대표팀 선수 2명을 내주는 출혈이 있었지만 감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세터 최태웅(34)까지 합류시키는 예상치 못한 성과도 올렸다. 게다가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외국인 선수 헥터 소토(32)까지 영입해 구상을 현실화시켰다.

김 감독은 "박철우의 공백을 막기 위해 문성민을 잡았고 최태웅까지 데려와 모자라는 부분을 채웠다. 사실 최태웅이 보호선수로 풀려 깜짝 놀랐다. 솔직히 최태웅이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명단을 보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최태웅을 선택했다"고 만족해 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최태웅과 권영민(30)을 교대로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레프트에는 문성민에게 붙박이 주전 자리를 맡기고 외국인 선수 소토를 상황에 맞게 투입시킨다는 입장이다. KOVO컵 MVP인 주상용(28)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김 감독은 "태웅이와 영민이는 그동안 매번 결승전에서 마주친 상대다.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서로 마음이 다치지 않게 출전 시간을 배려하겠다. 소토는 세계선수권 비디오를 보니 괜찮았다. 전성기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지만 레프트와 라이트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에서 뛴 경험이 있어 아시아 문화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에서 환희와 아쉬움을 동시에 경험한 김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인 선수로 두 차례 우승을 함께 했던 숀 루니(28. 미국)를 꼽았다. "루니가 가장 한국적인 배구에 잘 맞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묻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라이벌팀 주포 가빈(24)에게 한 표를 던졌다.

3년 재계약으로 장기 집권 체제에 들어선 김 감독은 세대교체가 적지 않게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김 감독은 "2004년 처음 왔을 때 선수 대부분이 23~24살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30대다. 꾸준히 체력 훈련을 시켜 아직까지는 특별히 처진다는 느낌은 없다"면서도 "삼성화재와 우리가 힘든 것이 바로 세대교체다. 상위권을 유지한 탓에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많았다. 2~3년 후에는 우리 팀 주전 선수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역 최고령 선수인 후인정(36)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김 감독은 "후인정은 현대캐피탈에 상징적인 선수다. 본인이 계속 뛰고 싶다고 말하면 무조건 OK다.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코트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김 감독도 밖에서는 아들과 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인터뷰 중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골프선수인 아들 김준과 배구선수 딸인 김미나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김 감독은 "미나는 이탈리아에서 아주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시즌 중 외국인 선수들을 지켜보다가 우리 팀이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면서 "준이는 이탈리아 프로무대에서 오랜 기간 뛸 정도로 재능이 있다. 최근 운동에 조금 소홀한 것 같은데 연말에 한국으로 불러 연습을 독하게 시켜줘야겠다"고 웃어보였다.

김 감독과 현대캐피탈의 차기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나를 믿고 3년이라는 시간을 줬다. 오프 시즌 동안 전력 보강이 잘 됐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해결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웃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비장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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