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명창은 순천 태생으로 염금향 선생으로부터 여러서 판소리의 기초를 배운 뒤 조상현 명창으로부터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를 사사했다. 남자 소리를 배웠다는 점이 지금의 박지윤 명창을 이해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본래 판소리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근세에 들어 여자들이 판소리를 주도하게 됐으나 본래는 남성의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판소리는 남성 중심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남자소리라야 정통 판소리의 맛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지윤은 보다 정통 판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정응민제 <심청가>는 강산제 <심청가>라고 불렀다. 이 <심청가>는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라고 하는 박유전으로부터 시작이 돼 정재근, 정응민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박유전의 호가 강산이므로 강산제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요즈음에 와서 ‘정응민 바디’니 ‘정응민제’니 하는 것은 박유전보다는 정응민으로부터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명칭이다.

박유전은 오래 전 사람이라 그 소리가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여창은 상청(고음)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들을 맛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여창의 경우에는 고음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친다.

여자의 목소리는 가볍기 때문에 저음에서는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고음의 효과에 의존하게 되는데, 애원성으로 정수리를 치는 듯한 고음을 발할 때 내는 소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 때 느끼는 긴장감을 판소리에서는 ‘서슬’이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서슬’을 사전에서는 “강하고 날카로운 기세”라고 한다. 소리에 서슬이 있다는 것은 소리를 이끌어나가는 소리꾼의 기세가 그만큼 당차고 매섭다는 뜻이다.

박지윤 명창은 여창이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상청, 애원성, 서슬을 다 갖추었다. 거기에다가 박지윤은 아기자기한 성음의 변화를 극단까지 추구하는 보성소리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소리꾼이다. 게다가 감정 표현까지 제대로 할 줄 안다.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춘 소리꾼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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