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은 드셨습니까?

2010-01-06     엄범희 기자
[투데이안 객원논설위원]설날아침에 식탁에 오르는 떡국은 만복을 부르는 염원을 담아내는 대표적 세시음식 일게다.

희디 흰 쌀떡처럼 무탈하기를 바라는 것도 그렇고, 무병장수하길 바라는 소망을 길고 긴 가래떡에 담아내는가 하면, 심지어 엽전처럼 둥글게 썰어 떡국을 끓여 먹음으로써 재복이 넝쿨 채 굴러 들어오길 소망하는 것이었기에 쌀을 쪄 떡을 만들고 이를 가래로 빚어 둥글납작하게 썰어내야 한 수고로움만큼이나 상서롭고 소중한 세시풍습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떡국을 우리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육당 최남선 선생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되었으며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였고 특히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에 대해선 새해를 흰 음식으로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부활신생을 소망하는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떡국은 우리 민족사와 애환을 같이 해 온 민족혼이나 다를 바 없겠다.

어쨌든 떡국은 쌀밥을 먹고 흰옷을 즐겨 입던 우리 민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먹을 것 흘러넘치는 요즈음 떡국이 사시사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게다.

“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떡국은 원래 흰떡과 함께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어 끓이는데. 쇠고기는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꿩은 야생 조류라 잡기 힘들어 대신 닭고기를 이용하면서 생겨난 속담 일게다.

이처럼 떡국의 주인공은 흰떡 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역시 떡국의 진 맛을 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꿩고기, 닭고기, 쇠고기, 조갯살 등이 우려져 나온 장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떡국은 별다른 찬 없이도 맛있고 든든한 일품요리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처럼 우리의 교유한 음식 혼이 깃들어진 떡국이 사라질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바로 일제 강점기 때다.
그들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음력설을 폐지하고 양력설을 강요하면서 설날을 전후 해 떡 방앗간에 휴업을 명했지만 우리의 민초들은 어떻게든 가래떡을 뽑아 설날이면 하연 떡국을 끓이고 차례를 지냈다고 하니.

설날과 떡국은 일본의 폭압에서도 지켜낸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이요 문화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떡국이 일제의 떡 방앗간 강제 휴업령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떡국의 주원료인 쌀이 , 그 쌀을 생산하는 농업이, 백척간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피폐 일로에 있는 농촌과 농업이 끝내 붕괴되고 만다면 , 그래서 외국에서 들여 온 농약 묻은 수입쌀로 가래떡을 뽑고 떡국을 끓인다면 그것은 이미 떡국이 아니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을게다.

저명한 극작가인 고 차범석 선생은 말했다. “ 설날 아침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하얀 떡국을 먹는 풍습은 의식의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작고 시든 인정을 되살리기 위한 하나의 전초전 이다”

경인 새해 첫날, 떡국은 드셨습니까? 안 드셨다면 이제라도 가족끼리 모여 앉아 작고 시든 인정의 불씨를 되살리는 하얀 떡국을 끓여 소담스런 질그릇에 담아내어 나누어 먹음이 어떨런지.

그럼으로써 우리의 민족혼인 떡국이 백년, 천년을 지나도 영원히 우리 민족과 함께하는 만복을 부르는 세시음식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이번 휴일엔 가족 모두가 둘러 앉아 가래떡을 썰어 봄이 어떨지./나병훈 전북도교육청 농협지점장(starion5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