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차 북방한계선 끌어올린 익산 웅포 차밭
- 차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산림문화체험관도 인기
차(茶)를 마시면 비 개인 하늘처럼 마음이 맑아지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선인들은 맑은 바람이 겨드랑이에서 풀무질하는 듯 하다며 차 한 잔에 선사의 경지를 맛 볼 수 있다 노래했다. 우리나라 차 재배지로는 전남 보성이나 경남 하동, 제주도 등을 꼽지만 자연 그대로의 야생차밭은 흔치 않다.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익산지역에는 야생의 모습 그대로 차나무 군락지가 존재하고 있다. 직접 찻잎을 따고 덖고 맛볼 수 있는 익산 산림문화체험관을 찾아가봤다.
# 최북단 야생차단지 웅포 차밭
황등과 웅포를 잇는 722번 지방도를 가다보면 입점리 구룡목 마을 입구에 ‘대한민국 최북단 차나무 군락지’란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의 새 주소는 ‘녹차마을길’로 이름부터 진한 차향이 배어나올 것 같다. 길을 따라 1km 쯤 걸으면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에 잘 가꾸어진 연둣빛 차밭과 산림문화체험관을 만날 수 있다. 층층 계단처럼 가지런한 차밭은 아담하지만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야생차밭이 있는 곳은 예전 ‘임해사’라고 하는 절터였다. 임해사는 숭림사의 말사로 구전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재배하던 차나무가 절이 소실된 후 야생으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웅포 야생차단지는 국내 최북단 야생차자생지로 외형, 유전자형 등이 특징이 있어 현지보존 가치가 높은 A등급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단위 차밭과 달리 산에서 소규모 야생 상태로 자라 좀더 깊고 깔끔한 맛을 지닌다. 대부분 크기가 2.5m~3m 내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것으로 알려진 여수 돌산과 밀양의 차나무들과 어깨를 견줄만하다.
# 찻잎 따고 덖고... 마음까지 닦아요
올해 차는 풍년이다. 날이 따뜻해 평소보다 보름 정도 빠른 4월말부터 수확이 시작됐다. 햇빛과 봄비가 일군 차는 7월까지 거둬들이는데 지난 화요일에는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다례부 학생 24명이 제다체험을 위해 산림문화체험관을 찾았다.
차 만들기 시작은 찻잎 따기 ‘채다’부터 시작한다. “1창2기만 기억하면 돼. 창은 뾰족한 새순이고, 기는 잎이야. 이파리가 좀 크다 싶으면 1창1기만 따고, 보드랍다 싶으면 1창2기를 따면 된다. 참 쉽지?” 양경자 교사의 말을 따라 학생들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 길이에 잎이 한두 개 붙은 찻잎을 톡톡 바지런히 골라 담는다. 잎 따기가 얼추 다 되자 제다 체험장에 딴 잎들을 펼쳐 놓았다. 그늘진 곳에 가만히 널어놓아 수분을 날리는 ‘탄방’으로 이렇게 한동안 시들도록 내버려두었다가 고온에서 덖는 ‘살청’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낀 뒤 250~280℃로 맞춘 솥에 살살 찻잎을 덖기 시작했다. 찻잎을 뜨거운 무쇠솥에서 익히면 효소의 촉진작용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맛도 구수해진다. 찻잎이 익자 체험실 가득 구수한 차 향기가 퍼진다. 덖은 다음은 비비기, 이는 ‘유념’이다. “적당히 조직을 파괴시켜 모양을 만들고 부피를 줄여주는 과정이니까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도록 약하게, 강하게, 다시 약하게 적당히 비벼주는 게 중요해요.” 산림문화체험관 김한주 씨가 매 과정마다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비빈 찻잎들이 서로 뭉치지 않도록 털고 난 다음에는 일정 시간 건조시키는데 수분이 어느 정도 마른 다음 다시 덖기를 실시한다. 처음보다 약한 불로, 손길도 더 부드럽게 해야 차가 바스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세 번 덖고, 세 번 쯤 건조하니 차가 완성되었다.
제다에 이어 학생들은 은은한 차향을 맡으며 차 시음의 시간을 가졌다. 김예솔 양은 “찻잎을 따고, 덖고, 비비고, 털고, 말리기를 되풀이 해 보니 차 한 잔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고 했고, 이송연 양은 “전에는 제다체험을 위해 하동이나 보성으로 가곤 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차를 수확하고 맛볼 수 있어 참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야생차 군락지는 함라산, 봉화산 둘레길과 연결되고 서편으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너른 평야 등 조망권도 뛰어나 더위가 짙어지기 전 나들이 삼아 둘러보면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