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기의 한국교회 본질로 돌아가자'

2025-11-24     엄범희 기자

/<편집위원의 시선>정종인 본사 편집위원 정읍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의장

2025년 현재, 한국교회는 중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기독교 혐오’라는 단어가 사회적 유행어처럼 떠돌고, 젊은 세대의 상당수가 교회를 불신한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교회가 한때 사회의 도덕적 나침반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상의 비판을 받는 집단으로 추락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기복주의 신앙이 신앙의 본질을 가려버렸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헌금하면 자녀가 잘 된다’는 식의 이른바 ‘축복 신학’이 교회 강단을 지배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지만, 세상적 복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그 복은 하늘의 신령한 영생의 복이다. 신앙은 하나님을 이용해 내 소원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다.

이제 교회의 기도는 간절함이 아니라 거래가 되어버렸다. ‘믿음’이 아니라 ‘투자’처럼 변질된 것이다.

둘째, 물질주의의 침투가 심각하다. 예배당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교회는 기업처럼 운영된다.

목회자의 성공이 교회의 규모로 측정되고, 가난한 이웃보다는 부유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우선된다.

예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는데, 우리는 대리석 성전 안에서 그분을 닮았다고 말한다.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지 못할 때, 그 복음은 이미 힘을 잃은 것이다.

셋째, 세속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문제다. 일부 교회는 신앙의 이름으로 정치에 줄을 대고,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력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교회가 권력과 결탁할 때마다 역사는 부패와 타락으로 끝났다. 핍박 받던 초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부패는 시작됐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어야지,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교회는 복음을 잃고 표심만 남는다.

넷째, 종교적 신뢰의 붕괴가 있다. 사람들은 목사의 설교보다 그의 삶을 보고 판단한다.

교회의 가르침보다 성도의 행동을 보고 신뢰를 결정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사랑과 정의를 외치면서도 삶에서 보여주지 못하니 세상은 교회를 ‘위선의 상징’이라 부른다.

이건 교리의 위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교회 개혁이 아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회복 운동'이 제2의 종교개혁이다.

16세기 루터가 외쳤던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정신이 다시 한국교회 안에 살아나야 한다.

루터의 개혁이 ‘교리의 개혁’이었다면, 오늘 우리의 개혁은 변화되는 ‘삶의 개혁’, ‘윤리의 개혁’이어야 한다.

그 회복의 길은 세 가지다.

첫째,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이 교회의 기준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목사의 말이 절대권력이 되어버렸다.

성경은 지도자의 무기가 아니라 모든 신자의 양심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둘째, 예수의 리더쉽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하셨다.

교회 지도자들이 권위를 내려놓고 무릎 꿇는 섬김을 보여줄 때, 신뢰는 다시 회복된다.

셋째,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예수는 내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우리 교회’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고, 정의를 실천하며, 신앙이 삶으로 이어질 때 교회는 빛을 낸다.

제2의 종교개혁은 거창한 운동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대형교회나 유명 목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평신도 한 사람의 회개에서 시작된다. 루터는 '이 길이 옳다'고 믿고 말씀 앞에 선 한 사람의 용기가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고 적시했다 .

2025년의 한국교회가 다시 세상의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어야 한다.

“교회는 변해야 산다. 신앙은 새로워져야 산다.” 지금이야말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제2의 종교개혁이다.

※본 칼럼은 <투데이안>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