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영 작가의 '전주가 설래기 시작했다' 열두번째 이야기
<열두번째 이야기> 모악산 입구, 중인동에 살다
[투데이안] 중인동에 둥지를 튼 지 11년이 되었다. 예전엔 중인리가 완주군이었으나 30년 전에 전주시로 편입되면서 명칭도 중인동으로 변경이 되었다.
중인동은 도농이 함께 하는 곳으로 아직 농촌 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계절의 변화를 유독 잘 느낄 수 있다.
얼었던 대지가 녹는가 싶으면 아직 옷깃을 여미는 쌀쌀한 날씨에도 동네 주민들의 발길은 무척 바빠진다.
유독 과수원이 많은 마을이라 봄기운만 돌면 땅도 일구고 나뭇가지도 잡아주고 소독도 하며 한 해 과수 농사 준비로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모악산은 전주시, 김제시, 완주군의 세 지역에 걸쳐 있는 산으로, 등산로도 전주시의 중인동, 김제시의 금산사, 완주군의 구이로 오르는 세 곳이 대표적이다.
중인동은 전주시에서 모악산에 오르는 유일한 입구이기는 하나, 구이로 오르는 등산로에 비해 상권 개발이나 인프라가 많이 들어서 있지 않고 찾는 사람도 적은 편이다.
중인동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8곳으로, 아직 원시적이며 다양한 코스로 형성되어 등산하는 재미도 있고 골라 오르는 즐거움도 있는 매력 넘치는 곳이다.
중인동은 모악산 마실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추동마을 입구에서부터 원당마을, 학전마을, 완산생활체육공원, 노송 군락지, 갈마제, 신금마을, 화정마을, 봉암마을, 독배마을을 잇는 12.3㎞의 코스는 한적한 농촌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유유자적 걸을 수 있다.
주말이면 아내와 같이 음료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챙겨 이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중인동에 사는 낙 중의 하나이다.
이 길은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과수원 사잇길도 있고 논길도 만나고 도로도 건너고 야산도 오르고 저수지를 둘러 걷기도 하고 중간에 정자나 나무 그루터기를 만나면 잠시 앉아 쉬면서 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곤 한다.
완산생활체육공원은 중인동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고, 주중이든 주말이든 다양한 운동을 하기 위한 동호인들로 매일 불야성을 이루며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대낮같이 환한 체련공원에서 땀에 흠뻑 젖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건강해지는 것 같고 기분도 상쾌하여 자주 찾는 곳이다.
몇 해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두 달 동안 특훈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여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순례길 300킬로미터를 걷기로 계획하고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걷기 훈련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식사만 하고 곧장 체련공원으로 달려가 매일 1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던 추억은 오랫동안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체련공원 내에는 어두제라는 연못이 있다.
연못 한쪽 면에는 다양한 연꽃이 견본으로 심어져 있고, 연못에는 홍색과 백색의 연꽃이 피어난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연못은 지친 시민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연꽃이 피면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자주 찾아 거닐곤 한다.
아버지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새벽 일찍 금산사를 찾아 가장 큰 연등을 사서 누구보다도 먼저 대웅전 마당의 중앙에 걸곤 하셨다.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그리움이 더해간다.
어두제를 걷다 잠시 걸음을 멈춰 시내 방향을 바라보면 고층 건물마다 조명 불빛이 밝게 빛나는 도시 풍경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먼 행성을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궁금한 마음에 언젠가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한다.
중인동은 버스 종점이다. 종점 하면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뭔가 아련하기도 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도 간직하고 있어 좋다.
또한 종점은 시작점이기도 하여 시간만 맞추면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고 항상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어 좋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정거장을 지나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바쁜 경우가 아니고 짐이 없는 날이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종점은 모악산을 등반하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그래서 종점 부근에는 유독 맛집이 많다. 젊은이보다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청국장이나 순대, 김치찌개, 닭볶음탕과 같은 토속 음식이 주메뉴이다.
우리도 마실길을 걷다 종종 동네 식당을 한 곳 한 곳 찾아다니며 맛집 별점을 주는 재미도 솔솔 하다.
지금 중인동은 농촌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도시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11년 전만 해도 저녁 식사를 하고 동네에 나오면 대부분의 집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 마을 전체가 절간처럼 고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주택과 상가를 지으면서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생활이 편리해져 좋은 점도 있으나 뭔가 아쉽다. 편리함을 찾아서 이곳에 이사 온 것이 아닌데 날로 도시화되어 가는 중인동의 변화가 불편할 때도 있다.
처음 이사 올 때와 지금은 상전벽해를 실감케 할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
시내에서 중인동으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1차 공사를 마치고 2차 공사 중이고, 새만금과 포항을 잇는 동서고속도로도 공사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변화가 중인동에 찾아올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대문 앞에 야채나 과일을 놓고 가시는 이웃의 훈훈한 정이 남아 있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지내는 원주민 부락의 모습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이 멋진 중인동에 살고 있는 우리 부부도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