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영 작가의 '전주가 설레기 시작했다' 다섯번째 이야기
<다섯번째 이야기>도시재생의 상징, 노송동
[투데이안]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공이 허공을 가르고 운동복을 입은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재빠르게 움직인다.
교정 한편에 앉아 야구부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으니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놀던 풋풋했던 학창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학창 시절 힘든 시간 속에서도 전국대회가 열리면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응원하며 잠시나마 지친 마음을 쉬게 해 준 게 바로 야구였다.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를 응원하기 위해 학교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동대문구장을 찾았었다.
시골 촌놈이 처음 서울에 상경하여 높은 빌딩에 놀라기도 하고, 오가는 버스 속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즐거웠던 순간은 고교시절 추억의 백미로 남아 있다. 작년엔 청룡기, 봉황대기에 이어 전국체전까지 우승을 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야구부가 되었다.
지역 주민들도 KCC 농구단의 연고지 이전으로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으며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도 했다.
침체되어 있던 야구부가 다시금 예전 야구 명문고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감독과 좋은 선수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열렬한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J고등학교 배정을 받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입학도 하기 전에 교복을 맞춰 입혀 고향 어른들에게 자랑하시며 그토록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은 그때 처음 보았던 것 같다.
힘든 생활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쏟아붓는 부모님을 보며 항상 가슴 한편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학생의 처지에 뭐 하나 해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고등학교 진학은 부모님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린 것 같아 뿌듯했다.
비록 입시제도가 바뀌어 속칭 뺑뺑이인 평준화의 수혜를 입은 것이지만 그래도 잠시라도 효도를 한 것 같아 정말 기뻤었다.
기쁨도 잠시, 고등학교 3년은 힘들고 고단했다. 입학을 하자마자 야간학습을 하며 달을 보고 등교를 해서 별을 보고 하교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늦는 귀가를 하며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됐다. 학교 근처 상가에 이상한 불빛의 유리문 사이로 야한 차림의 여성들이 많이 서 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매매업소가 밀집한 선미촌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창 호기심 많은 나이에 우리들의 관심은 높아갔고, 이런저런 소문으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금도 동창회에 가면 당시 일들을 후일담 삼아 자랑하며 깔깔대는 친구들의 모습이 고등학생 시절 철없던 모습 그대로여서 정겹다.
예전엔 기차역 주변으로 성매매업소가 집결하여 있던 시절이라 전주역 주위로 선미촌이 있었던 것이다. 전라선이 외곽으로 이설 되어 전주역이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지금의 전주시청이 신축됐다.
그 후 성매매집결지에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면서 업소들은 모두 사라지고 성매매여성 인권 보호와 문화예술 등의 복합 거점 공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논리와 지속적 투자의 어려움으로 사업이 중단되고 예술가와 시민들이 떠나면서 빈집이 많아지고 지역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어 안타깝다.
선미촌 문화재생사업 1차 목표인 성매매업소의 퇴출이 어렵게 마무리되었으나, 이제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
도시재생은 단순하게 자금만 투자하거나 외부인을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팔복동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자금이 투자되어 반짝 인기는 끌었지만 오래지 않아 폐쇄됐다. 단순히 카페나 식당만으로는 사람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운영자들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투자나 관리보다는 지원금에만 의지하고 반짝 수익을 내고 떠나려는 생각이 앞서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간을 정비하고 조성할 때는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콘텐츠의 고민이 중요하다.
도시재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한번 쇠락한 도시를 다시 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인구도 줄고, 하드웨어적인 발전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성장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외형적인 구색만으로는 재생을 이루기 어렵다. 시민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여야만 도시가 재생될 수 있는 것이다.
노송동은 대표적인 구도심이다. 노송동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첫 삽을 떴으니 잘 추진하여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모델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작업 없이는 도시가 발전하기 어렵다. 신도시 개발을 통한 도시 성장은 근시적으론 도시가 발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풍선효과로 도시가 쇠퇴화하는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개발과 함께 재생이 병행되어 구도심과 신도심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도시 발전이 필요하다.
외국이나 국내의 성공 사례를 보면 단순히 기존 공간을 현대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문화, 예술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노송동은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옛 철도의 향수와 미래의 첨단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도시재생의 모델이 필요하다. 시청에서부터 한옥마을까지 인공지능을 이용한 무인 버스나 스마트 전철을 운행해 보면 어떨까?
전주·완주의 통합으로 전주시청이 이전하게 되면 시청 건물을 전주의 과거와 미래를 담아낼 수 있는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활용해 보자. 거기에 더해 미래의 어젠다이기도 하고 노송동의 좋은 가치인 기부문화를 도시재생에 접목하자.
금전적인 기부도 좋고, 재능 기부도 좋고 가능한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만들어 낸 도시재생의 결과는 생각만 해도 좋다. 행정 주도적인 사업은 한계가 있다. 물론 행정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완성과 유지는 결국 시민의 몫이다.
그래야 지속적이고 진정성 있는 도시재생이 될 수 있다. 창업, 취업, 시설과 같이 통계를 위한 성과 위주의 요식행위가 아닌 사람에 투자하여 가치와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창의력으로 서울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꿈꾸고 상상해야 변화할 수 있다.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고 시도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옛 철길을 달리던 기차 대신 무인 버스를 타고 아름답고 스마트한 전주를 달리는 상상에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