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한 되, 인심 한 말
- 추석엔 전통시장 가볼까? ‘여산시장’
마음이 풍성해지는 한가위가 코앞이다. 이번 명절엔 넉넉한 인심과 고르는 재미가 있는 시골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규모는 작지만 장도 보고 지역 별미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 구수한 ‘고향 정’ 넘치는 여산시장을 소개한다.
# 모든 길은 여산으로 통했고...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은 여산초교 교가에서 여산을 이렇게 노래한다.
이렇다 할 자랑이 없다 했지만 그 스스로가 고향 여산의 가장 큰 자랑이 되었다. 어디 가람 뿐이겠는가, 여산은 천주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또, 동쪽으로는 완주군, 북으로는 충남 논산시와 접해 있고 호남고속도로와 국도 1호선, 지방도 등이 통과해 예부터 ‘못 가는 곳 없는 동네’로 통했다. 아직도 하루 세 번 대전을 오가는 직행버스가 다니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형성됐다고 전해지는 여산시장은 공식 기록으로는 1963년 12월에 개설돼 1일, 6일마다 오일장이 열린다.
말일이 31일인 달에는 다음 달 1일에 장이 선다. 3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우시장이 있어 사람이 치일 정도로 많았지만 현재는 망성, 낭산, 삼기 주민을 비롯해 천주교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져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다.
# 오일마다 열리는 잔치, 인생을 사고팔다
전통시장은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쉼터이자 명절 꼭 지나쳐야 하는 정거장 같은 곳이다.
직접 재배한 양파를 팔러나온 김복녀 씨는 “집에만 있다가 이렇게 시장에 나오면 콧바람을 쐬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고 “다섯 살짜리 딸에게 옛 장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여산까지 찾아왔다”는 정병오 씨는 찐 옥수수와 고구마 등 잔뜩 장을 보고 돌아갔다.
장터 방앗간은 고추 빻는 소리와 깨 볶는 내음, 떡 찌는 김이 뒤엉켜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무료한 생활에 떨어지는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같이 즐거움을 주는 장면이라 넋을 놓고 바라봤다.
양 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온 이정순 씨는 “명절날 자식들 주려고 기름을 짜러 왔는데 주인이 바빠서 직접 해야겠다”며 조리로 깨를 일었다.
# 들어는 봤나요 똥짜장, 이름도 몰라요 국밥집
이름도 전화번호도 없는 여산 순대국밥집은 가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조차 힘들었다.
메뉴판이 없어 뭘 주문해야하나 했는데 손들은 알아서 잘도 주문을 해 순대와 수육, 국밥에 막걸리를 곁들여 먹었다.
“여그와서 보니께 좋구만” 국밥집 안을 오가는 이들은 서로 눈인사 손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마을 주민이거나 학교 동창, 혹은 먼 친척인 경우가 많은데 좁은 테이블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모처럼 미뤄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산장은 순대국밥 외에도 ‘똥짜장’이라 불리는 장 짜장이 유명하다. 70년 된 송가네와 50년 된 최씨네가 스무 걸음 남짓 사이에 맞붙어 있는데 두 집 다 맛은 비슷하다.
갓 뽑은 면에 고기 없이 걸쭉한 짜장소스를 부어 파를 송송 뿌려 내는데 이름은 민망해도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아 인기가 많다고. 짜장과 가락국수는 한 그릇 2천5백원, 곱빼기는 3천원이다.
# 스크린 속 여산시장 있다~
옛 모습이 살아있는 여산시장은 2009년 개봉한 영화 ‘마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 국토대장정을 소재로 한 영화 ‘577프로젝트’에서 공효진과 하정우를 비롯한 10여명의 배우들은 시장 근처 여산성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발목을 삐끗한 조연배우와 하정우는 장터 ‘감초당한의원’에서 침을 맞기도 했다.
여산시장에서는 시골장의 정취 뿐 아니라 영화 속 장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