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2023-12-31     엄범희 기자

- ‘정신적 무국적’의 한 아웃사이더가 비디오아트라는 자유로운 놀이터를 개척해낸 사연

조현철 군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직과 교수(시네몽 회원)

[투데이안] 1950년대 중반, 그는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황폐화된 이 땅의 남쪽 부르조와 계급의 맨 앞줄에 편입됐던 신분이었단다.

극단적인 부유함으로 넘치던 스스로의 태생을 비관하며, 20대의 혈기로 들끓던 이 청년이 순수의 시각으로 내다 본 조국의 현실은, 모순과 차별로 가득 차 있었단다.

이를 타도하고자 하는 성향으로 인해, 그는 부친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었고, 폭압적 반공 지배 체제를 운영했던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일차적 척결 대상이 되어 있을 터였단다.

일찍이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발달시켰던 그를 사로잡은 것은, 당시 현대 음악의 선구로 기치를 올리던 쉔베르크였단다.

고전음악의 질서를 격렬히 파괴하고 새로운 역동의 아름다움을 구성해내는데 매료되었던 청년은, 그렇게 가문과 조국을 등지고 예술적 혁신을 꿈꾸며 독일로 향하였단다.

1958년 이전을 그는 ‘BC’라 불렀단다: Before Cage. 바로 존 케이지를 알기 이전 시기라는 것.

뮌헨에서 케이지가 연 명색의 ‘음악회’에서 관객 모독에 가까운 무책임한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참석자 중 드물게 이 작곡가에게 열광한 사람이 바로 그였단다.

무질서와 우연성에 의한, 음악이 아닌 소리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이 전위예술의 태도가 그에게 준 충격은 그토록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절친이 되었고, 서로를 존경으로 언급한 작품들에는, 각자 피아노를 도끼로 내려치는 퍼포먼스가 포함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파격과 전복의 실천을 감행하는 그의 예술이 추구하는 미덕은, ‘새로움’이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 새로움은 진리보다도, 아름다움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되었다.

새로움을 향한 남준의 실천은, 모두에게 너무도 친숙한 수단을 향해 감행되었다. 그것은 바로 텔레비전이라 불리우는 물리적 매체였다.

모두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내용을 시청자의 눈과 귀에 질서정연하게 주입해대는, 이 일상의 도구는 반드시 ‘새롭게’ 활용되어야 했다.

치밀하게 조직화된 내용들을 세밀하고 선명한 형태로 대중에게 배급해대던 텔레비전은 이제, 모호한 윤곽선들과 점들이 예측 난망인 방식으로 어지럽게 움직이며 비정형성과 우연성이 빚어내는 신선한 리듬과 페턴을 만들어내는, 현장을 전달하는 ‘창’이 되고 있었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정신적 무국적’의 한 아웃사이더가, 그 모든 관성과 관습 및 근린 맥락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격리시키고, 완전한 자기만의 통찰과 지향성으로 어떻게 새로움을 구체화해나가고 있었는지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다.

이 순도 100%의 자기지향체가 꿰뚫어 본, 인간 유희의 중심에는, ‘상상력’이 있었다.

즐거움의 추구야 말로 예술활동의 본질이고, 우리가 누리는 순수한 즐거움의 원천은 가장 자유롭게 생각을 펼쳐내는 것이며, 오늘날 이 놀이터의 물리적 장소가 텔레비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태고 적부터 이 놀이를 즐겨왔으며, 어디서나 누구나 자신의 상상 내용을 그려넣을 수 있었던 각자의 창이, 바로 ‘달’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지난 세기 ‘시대의 도구’를 어지럽게 만지작거리며 가장 자유로운 놀이를 펼쳐댔던 한 예술가의 초상을, 무척이나 덜 ‘백남준스럽게’, 차분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조현철 군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직과 교수(시네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