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영붕 소장, 114년 전 10월 26일, 안중근 장군의 의거 2
/전주 안중근장군 기념관 원장/ 매천사상연구소장 김영붕
[투데이안] 일제는 1909년 9월에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간도 영유권을 청에 넘겨주었다.
그 대가로 일제는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무순탄광 채굴권을 얻어 일제의 만주 진출을 시도했다. 이 시기 이토 히로부미(伊滕博文)는 한일병합조약의 기초 공작을 했다.
그런 연유로 이토는 10월 26일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채프(Kokovsev,V.N.)를 만나러 하얼빈에 간 것이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는 데 성공했다.
매천 황현은 구례 오지에 살면서 안중근이 이토를 죽였다는 쾌거의 소식을 듣고 매천야록에 그 전말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또 국가의 원수를 갚은 장군의 의거를 찬양하는 다음과 같은 칠언율시의 애국시 <하얼빈의 소식(합보哈報)>를 썼다.
“西來一電聳三韓(서래일전용삼한)
서쪽으로 와 총성 한 번 울리자 삼한이 들썩였고
萬里霜風落鐵丸(만리상풍락철환)
만 리 길 서릿바람에 철환이 떨어졌네
鬼火自焚天眼炯(귀화자분천안형)
스스로 혼불 살라 황제의 눈 밝혔고
蛟腥忽漲海波丹(교성홀창해파단)
교룡의 피비린내 홀연히 넘쳐 바다 물결이 붉네
流民有此捐生勇(유민유차연생용)
백성이 이렇게 목숨 버리고 용기를 내도
殘局其如善後難(잔국기여선후난)
남은 흔적이 이와 같아 선행한 후 어렵겠네
夜上星臺瞻北極(야상성대첨북극)
밤에 누대에 올라 북두칠성 바라보고 있음에
白頭秀氣尙雄蟠(백두수기상웅반)
백두에 빼어난 기상 높이 웅건하게 서려있도다
하얼빈 역두에서 안중근의 총탄으로 쓰러진 4명 가운데 왜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는 10월 26일 9시 30분경 곧바로 죽었다.
이 사건은 대한제국을 들썩였고 중국의 쑨원(孫文)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매천 황현이 안중근 의거를 찬양한 위의 시에서, 순종 황제와 대한인大韓人에게 일제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일제日帝를 상징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피가 핏빛으로 바닷물이 물들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고 써 놓았다.
마지막 시구 ‘북두칠성’은 안중근의 본명인 안응칠을 말하고 있다. 안응칠의 거사로 한국인의 자존심이 회복됐고, 대한의 기상이 세계만방에 떨쳤다고 극찬을 해 놓았다.
장군은 거사 후 여순 감옥에서 『안응칠 역사』를 썼으며 200여 점의 이상의 유묵을 남겼다. 그 가운데 30여 점은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전주 전동성당, 남문 4거리에서 관통로 4거리 쪽으로 가다 보면 팔달로변 좌측 풍년제과 앞에 안중근 장군의 동상이 있고, 기념관에서 장군이 쓴 유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