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칼럼]수라 "아름다움을 보는 죄를 먼저 지어보세요!"
[투데이안] 도요새의 여정은 과연 글로벌 급이란다.
툰드라와 알래스카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발 비행을 하는 중, 동아시아에서 쉬어간다.
무려 30,000 킬로미터의 국제선 노정의 중간 기착지로 도요새가 몰려오는 곳이, 바로 한반도 남서 권역의 바다 선에 위치한 ‘수라’ 갯벌이다.
영화 『수라』는 이름처럼 ‘비단에 놓은 수’로서의 아름다움을 갖춘 이 갯벌이, 탐욕스럽고 허구적인 정치 경제적 구호 아래 어떻게 질식 상태에서 허덕대어왔는지, 따박따박한 말투로 조곤조곤 상기시키고 있다.
새만금방조제, 전라북도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주는 총 33.9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바다의 둑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 ‘특이한’ 사업이 진정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를 막은 뒤 내부를 매립함으로 인해 서울 면적의 2/3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간척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막대한 양의 ‘땅의 확대’는, 사실 다른 말로 그 만큼의 ‘바다의 손실’이다. 그리고 바다 생물과 그에 기반한 사람들의 ‘삶의 실종’이다.
이 단순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데 있어, 지난 시절 수많은 집회들과 토론들에서 만들어댄 목소리는 위정자들 귀의 가청 범위에 근접하지 못 했었다.
급기야는 부안에서 서울 까지 삼백 킬로를 삼보일배로 채웠던, 2003년 봄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성직자 4인의 살인적인 몸부림의 목소리도, 우리사회 정책결정권자들의 상식에 대한 정상청력을 되찾게 하는데 역부족이었었다.
그리해 2006년 대법원의 판결로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고, 이제 육지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희귀한 바다의 생명과 자원들이 터전을 잃고 질식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방조제 안쪽의 담수는 모이고 고여서 썩어가게 되었고, 수라의 갯벌도 말라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은 이 갯벌을 떠나게 됐다.
바다를 살리려는 투쟁을 벌여온 사람들 그리고 이 바다의 삶을 지탱해오던 사람들에게 닥쳤던 절망과 연이은 비극을 감당하기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탓이었다.
그러던 그가 2015년 수라 갯벌의 새를 조사한다는 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원(오동필)을 만나 반신반의하던 중, 이 곳에서 부리를 저으며 먹이를 찍어대던 150마리의 저어새(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를 만나게 됐다.
이 후 감독의 기록 본능이 열열한 기세로 향하던 대상은, 바로 이 척박한 땅을 10년도 넘는 세월 동안 버텨온 깜찍한 ‘요정’들이 됐다.
여기에선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흰발농게가 희귀한 만남을 허락하였고, 잿빛개구리매, 꼬마물떼새, 흰물떼새도 공중을 배회하고 있었으며, 더불어 수많은 종류의 도요새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가 고용한 호기심 가득하고 인내심 많은 카메라가 이 귀하신 몸들의 자태 하나하나를 대견해 하는 시각으로 제시하는 동안, 객석에는 황폐한 환경 속 이들 존재에 대한 안도와 감사의 한숨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급기야 잔뜩 긴장한 카메라가 수천 마리의 도요새가 어지럽게 군무를 펼치는 장관을 터질 듯한 생동감으로 스크린에 전달할 때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잡한 역동성을 담은 한 편의 ‘비단수’가 완성되고 있었다.
영화는 이 지역의 새 관찰과 생태 기록에 전념해온 오동필 활동가의 진솔함 기득한 현장 안내를 시종 따르고 있다.
그는 방조사업 이전 수라에서 맛보았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의 충만함 속에서 건재하고 있었을 때, 새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놈은 톡톡거렸고, 다른 놈은 두두둑하며 전진하였고, 전력 질주하여 달려가는 놈도 있었고, 살살살 걸어서 접근하는 놈도 있었다.
이 예쁜 것들을 본 죄로, 이것들의 사라짐 혹은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은 매진해올 수 밖에 없었다고...
그의 말을 따라, 영화 『수라』는 (잠재적)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유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스크린으로 수 놓아드린 비단, 수라의 아름다움을 보는 죄를 먼저 지어보세요!” 그리고 난 다음, 그 아름다움을 위해, 또 그것을 가져오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