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도 기네스, 애향심도 기네스 감이로구나
- 조통달 명창, 국악의 고장 익산의 명성 다시 찾기 위해 고향지켜-
익산과 국악은 낯설다. 하지만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라는 육중한 타이틀을 가지고도 가장 대중적인 판소리 명창, 조관우의 아버지로도 더욱 친근한 조통달 명창은 바로 익산출신이다.
지난달 22일에 조 명창은 아들 조관우, 제자 유태평양, 힙합 현준과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공연을 익산에 선보이며 시민들에게 익산이 국악의 고장임을 일깨워주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왕성한 활동 중인 조 명창이 굳이 고향인 익산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익산이 판소리의 고장임을 알리고 맥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조 명창은 “익산은 국악명창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판소리에 정정열, 권삼득, 정춘풍, 신만엽, 유공열, 거문고에 신쾌동, 시조에 김월하 등 국악의 많은 선생님들이 태어나신 곳인데 이 선생님들께서 익산에 살지 않고 타지로 떠나 익산이 판소리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고향에서 명창들이 국악의 뿌리를 내리고 퍼져나가고 또 시민들이 합심한다면 익산도 남원, 전주 못지 않은 국악의 고장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조통달 명창은 순천 정원박람회 6월 특별공연으로 '조통달의 판소리' 공연과 오는 22일 익산시 청광교회에서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조통달 명창>
조통달은 일찍이 1952년 8살의 나이로 전국명창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쥔 타고난 명창이었다. 친이모인 박초월명창과 임방월 선생으로 다섯 살 때부터 소리를 배웠다.
13세 때(1959년) 전국명창대회서 어른들을 제치고 받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변성기 때 목을 잃어 20년 가까이 좌절, 인분까지 먹어야 했던 그는 30세의 나이 득음을 통해 명창의 반열에 오른다.
그가 기억에 남는 일중 하나로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앞두고 전 세계에 판소리를 알리기 위해 1988년 유럽 7개국 11개 도시를 38일간 순회하며 완창한 춘향가는 세계적으로 무한한 감동을 주었던 때를 꼽는다.
후배육성에 큰 뜻을 두고 조통달은 300년 판소리 사상 처음으로 ‘6세 소년의 세 시간 완창기록’을 세웠던 유태평양군을 발굴,소리를 전수해 이제는 한류를 대표하는 국악인으로 성장시키는 등 판소리 교육자로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