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 칼럼] 이모작 인생을 앞두고 떠난 나주 천년여행

2023-04-17     김태철 기자

[투데이안] 정도전은 고려 말 공민왕이 죽고 난 뒤 당시 권문세족과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됐다.

그는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지지하던 신진사류였기 때문이다. 권문세족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나주 유배의 시련 속에서 새로운 나라창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태조 왕건은 나주지역의 도움을 받아 고려를 통일을 도왔다. 그는 나주 사람들에 대해 특별히 배려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왕건의 두 번째 부인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였다. 오씨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무(武)가 태자가 됐고 고려2대왕 혜종이 됐다.

전주와 함께 천년고도인 나주. 전라도를 만든 두 전통도시 전주와 나주가 아닌가?

전주와 사촌과 같은 도시이지만 자주 접촉이 없어 잘 모르는 나주를 알아보고 싶어 회사 동료들과 졸업여행을 이곳 나주로 향했다.

전주에서 90분를 소요해 영산강둔치체육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영산강변 아름다운 유채꽃밭의 규모는 6만여㎡나 된다고 한다.

영산강의 아기자기한 배경으로 유채밭이 끝이 없이 펼쳐져있어 시간이 허락된다면 전체를 강길을 따라 하염없이 트래킹 하고 싶어졌다.

오후 비소식이 있었으나 도착해 보니 날씨는 쌀쌀하면서 조금씩 봄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충만한 강가의 봄을 호흡한다. 친절한 광주분이라 밝힌 분이 사진을 찍어 주신다.

우리들의 가수이신 김수석님은 오늘 회계다. 얼마든지 좋은 홍어로 오찬을 모시겠다고 한다. 그는 포스코에서 근무한 돈을 잘 만들고 잘 사용 하는 멋쟁이다.

다리를 건너 영산포 홍어의 거리로 향한다.

홍어를 즐겨하시는 은선생님과 오수석님이 홍어맛집을 선택하고 코스요리로 시간을 풀어놓고 삭힌 홍어를 연신 여러 음식별로 맛을 본다.

한잔의 막걸리와 삼합과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삼합이 부족해 보여 추가로 주문하려다 김수석님이 말린다. 전주에서 먹어본 홍어요리와는 무엇인가 본고장에서 텃새를 갖게 해버린다.

영산포는 잡힌 홍어가 먼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이에 자연 발효돼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내게 됐다고 한다. 옛 영산포구가 있던 자리에 40여 곳의 홍어음식점이 있다.

고려 말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살던 섬주민들이 강을 따라 뭍으로 거슬러 왔는데, 그곳이 바로 나주의 영산포였다.

더운 날이면 다른 생선은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홍어만은 먹어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삭힌 홍어는 영산포의 특산물이 된 것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정약전이 말한 홍어와 막걸리로 봄날 나주 관광객이 돼 졸업여행에서 즐기고 있지 않는가? 가히 영산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만족도 200프로였다. 역시 금강산은 식후경이다.

관광에는 탁월한 음식이 함께 해야 한다. 나주의 홍어거리, 곰탕거리, 장어거리 배워야 한다. 왜 주인장과 종업원은 왜 이리 대책 없이 친절한가? 참 지금 여기가 좋다.

맛진 오찬 후 향한 곳은 도래마을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을 간직한 나주에 자리한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한바퀴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마을이다.

상쾌한 기운이 동네에 가득하다. 드넓은 나주 평야를 품에 안고 우뚝 솟은 식산 아래 자리 잡은 풍요로운 전통마을이다. 도래마을은 마을의 뒤를 감싼 산자락의 물줄기가 내천자를 이루는 형국이라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 한다.

다도면 풍산리에 있는 도래마을은 마을의 맥이 세 갈래로 갈라져 내 천(川)자 모양을 이룬다 해 '도래'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 중종 이후 풍산 홍씨의 집성촌이 됐다고 한다. 마을의 느낌은 뒷산을 배경으로 평온한 명당마을 이라는 느낌이 이었다.

동네 안에는 카페도 있었고 펜션과 같은 한옥숙박시설이 있어 편안한 힐링의 한옥마을 이었다. 주위에 풍산 홍씨는 누구지?

도래마을 옆에 전남산림자원연구소는 나주 유튜브 동영상에서 많이 소개 됐던 장소로 오늘 졸업여행 코스에 넣어 보았다.

63만여㎡의 면적에 1000여종의 산림자원과 메타세쿼이아길, 향나무길 중심의 아름다운 숲이 형성돼 있었다.

쾌적한 자연환경을 찾는 방문객들이 날로 증가하는 시점에 나주혁신도시가 가까워 자연 휴양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한다.

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전반적인 만족도 조사결과 사업별 만족도는 산림치유가 94.1%, 숲 해설 97.9%, 유아숲 교육이 97.9% 등으로 평균 만족도는 96.6%를 보였다.

오늘의 함께한 동료들의 가장 좋았다고 한 장소이기도 했다.

전주에는 도로공사수목원이 있지만 이곳은 연구소가 국가과제도 도전해 부가가치가 있는 분야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모양새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전남의 모습을 보았다.

이모양 저모양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평소보지 못한 세사람의 모습에 국회의원보좌관 출신 은선생님이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대화의 기교가 탁월한 분이시다. 늘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분으로 특별히 산을 많이 좋아하시는 분이시다.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ICT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필자의 동생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멀리 오셨는데 커피 한잔 모시고 싶다고 한다.

동생은 자신의 노력으로 공기업 처장까지 진급한 노력하는 친구다. 평소 자신의 전문분야로 외국에서 석사학위와 인근 광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전문성과 최연소 처장으로 최선을 다해 조직발전을 위해 노력한 친구다.

이제는 진급보다 그동안 배운 경험을 배경으로 주위 전문가들과 함께 책도 쓰고 사람을 키우는 여유 있는 리더가 됐으면 한다.

이 정도면 이 땅에서 행복하고 성공하지 않았는가? 우리 졸업여행단은 광주와 나주의 기업유치와 지원정책, 나주혁신도시 상황을 전주와 비교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서울 도성과 같은 사대문과 객사, 동헌 등을 고루 갖춘 나주는 예로부터 ‘작은 한양’으로 불렸을 만큼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관찰사가 관할 구역을 수행할 때 업무를 보던 곳이자 중앙의 사신이 머무르던 곳인 ‘객사’의 역할이 더욱 컷다.

금성관 뒤편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650여 년 된 오래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용에 금성관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을의 나주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전남 지역에서도 많지 않은 객사 중 하나로 그 규모가 웅장하다는 점에서 더욱 눈여겨 볼만한 나주 객사, 금성관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특별하게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임금의 무사안녕을 위한 제를 올리던 곳이자 금성관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동익헌과 서익헌에서 외국이나 중앙에서 출장 온 사신 혹은 관리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으뜸 호텔 정도가 아니었을까? 뿐만 아니라 금성관은 역사적으로도 경외감을 표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선생이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졌던 곳이자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시해했을 때 명성황후의 관을 모셔 항일정신을 드높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주목사가 지냈던 공간들과 사대문이 있어 천년고도의 아름다운 한옥들이 즐비한 지역이었다.

나주곰탕거리와 카페들이 함께해 최근의 추세들을 잘 반영하고 미래관광에 고민하고 있는 나주사람들을 보았다.

졸업여행과 이모작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3917마중 유명카페로 행했다.

마중은 나주향교 옆 4000평의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어 공간 대여로 스몰웨딩과 워크숍, 돌잔치 장소로도 이용되며 식사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입구에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연리목이 있는데, 연리목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연리목 아래에 소원 문구가 적힌 기와장이 쌓여 있는데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된다고 한다. 또한 목서원 고택은 숙박과 대여로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고택 분위기가 참 좋다.

카페에서 세트메뉴를 주문하면 이곳 목서원 내부에 들어가서 다과를 즐길 수도 있단다. 목서원은 드라마 <알고 있지만>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드라마 장면이 게시돼 있다.

봄에는 가까운 ‘한수제’ 벚꽃을 보면서 ‘마중’과 함께해도 좋을 듯 하다. 카페를 이용하면서 야외에 있는 공간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을 가질 수 있는 도심속 마음에 쏙 드는 카페였다.

가족들과 함께 나주여행을 구상해 본다. 좋은 곳을 소개 받으면 아내와 함께 반드시 재방문 하시는 오수석님은 언제쯤 나주에 오실까? 오늘의 주인공 오수석님의 배려로 차량을 제공하시고 오늘 운전까지 봉사하신다.

감사드리고 오수석님의 퇴임 후 이모작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하시기 기원해 본다.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스마트하고 실력 있는 연구원이다.

늘 옳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곧은 선비와 같으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직장에서 감사실장의 경력이 있다.

조선시대의 중요 해상 운송로인 영산포로 모여 들었다. 나주평야의 농산물과 축산물 그리고 해안의 해산물이 영산포로 모두 집결했다. 상품과 사람이 모여드는 곳 나주였다.

예로부터 유명한 나주 음식 중 오늘은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를 다 먹어보려한다. 오찬은 홍어코스요리, 만찬은 바로 '나주 곰탕'이다.

곰탕은 푹 고아서 끓인다는 "고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이전에는 왕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나주 5일장을 통해 소뼈와 부산물 등을 넣어 맑은 국물을 만들어 먹던 데서 나주 곰탕이 유래했다.

사골을 육수로 우려서 국물이 뿌연 색을 띄는 일반 곰탕과는 그 맛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아예 따로 명사화돼 '나주 곰탕'으로 불린다. 잊지 못할 진한 국물 맛이 있어 자꾸 홀짝거리며 먹는 곰탕, 참 서민적이고 편안한 요리라 좋다. 은선생님은 광주에 자주 오신다.

오실적 마다 시간 내어 방문 하신다는 오늘의 나주곰탕 맛집. 오늘에야 나주곰탕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됐다. 이 집에서 약속을 하지 않고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수석님의 이모작인생을 진심 응원하고 나주여행단원들 모두가 제2기 졸업여행을 더 기대하며 전주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