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사상연구소장 김영붕의 ‘매천 황현의 한시漢詩 읽기

2022-11-29     엄범희 기자

1. <절명시絶命詩>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안다)”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한 세기를 앞서 살아간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은 '매천야록' '오하기문' 등을 남긴 역사학자요, 문학가 시인으로 또 애국계몽사상가, 교육가,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매천은 1855년 광양에서 태어나 평생을 구례에서 살았다.

살아생전에 호남삼걸湖南三傑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선 후기 3대 시인으로 신사가新四家로 당대를 풍미했다.

매천이 남긴 글은 후세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은감불원殷鑑不遠(은나라의 왕이 거울삼을 만한 것은 먼데 있지 않다; '시경' 「탕편」)의 고사가 있듯이 우리는 매천의 시문詩文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고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멸망되자 선비로서의 책임과 치욕스러움에 통분해 칠언절구 4수 1편의 <절명시>를 남기고 일제에 항거해 목숨을 끊었다.

제1수에서 분연한 자결에의 의지, 제2수에서는 망국의 한, 제3수에서는 반성해 보는 지식인의 자세, 제4수에서는 투쟁하지 못한 자기 신명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마무리였다.

이 <절명시> 가운데 제3수에 후세의 한국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있다.

“새 짐승 슬피 울고 산 바다도 찡그리고(조수애명해악빈, 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금수강산 침몰돼 없어졌네(근화세계이침륜, 槿花世界已沉淪)//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오랜 역사 되새기니(추등엄권회천고, 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선비답게 행세하기 어렵도다(난작인간식자인, 難作人間識字人)”라 읊었다.

'매천야록'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읽고 싶지 않은 「한일병합조약」의 전문이 있다.

“제1조 :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한국은 완전히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는 내용이다.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은 윤덕영을 시켜 어새를 날인케 하니 조선 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되고 말았다.

이날 체결된 조약은 일주일 동안 비밀에 부치다가 칙유와 함께 이를 반포한 것은 융희 4년 8월 29일(양력)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이 조약으로 매천은 더이상 순종황제의 조칙이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3차례에 걸쳐 다량의 아편을 먹고 9월 10일 자결 순국했다.

한국은 경술국치 이후로 수치스럽게도 35년간이나 온갖 수모를 겪고 일제의 식민지로 살았다.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의 사명이 있다. 국가가 망해가고 망해버린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은 매국 행위를 견제하고 구국救國에 앞장서야 한다. 매천은 이 <절명시>에서 위정자들의 매국의 책임을 묻고 일제에 대항하려는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밝혔다.

매천은 단 하루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가가 망한 것을 혼자만의 책임인냥 일제의 국권 침탈을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죽음으로 지식인의 사명을, 선비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매천의 사상은 충인의忠仁義의 사상이다.

매천은 조선조 제일의 애국시인이다. 조선왕조의 멸망 과정을 '매천야록'에 기록하면서 대은大隱의 선비로 평생에 걸쳐 통곡의 삶을 살았다.

그의 많은 애국시 내지는 우국시憂國詩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