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심고 예술을 꽃피우다
- 분재인생 30년, 김병록 씨를 만나다
인생 칠십은 옛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섰다. 50세를 전후로 은퇴, 노후, 여생이란 단어를 맞닥뜨리는 직장인들에게 반질반질한 인생 후반전을 언제나 고민거리다.
# 나무토막이 작품이 되다?
이리상고(현 제일고)와 원광대학교에서 각각 교사와 교수로 재직했던 김병록(70) 씨는 은퇴 후 익산시 오산면 집 앞마당에 하우스를 한 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28년간 키워온 분재작품을 300여점을 채워 자신만의 미니정원을 꾸몄다.
김 씨는 40대 초반 교사로 재직할 당시 우연히 지인을 통해 분재를 접하게 됐다. “나무 몽둥이 끊어진 것을 토방위에 여러 점을 놨는데, 그걸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아서 가지고 있던 비싼 그림을 주고 사정해서 바꿔왔지요.”
분재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전국을 누볐다. 한창 일할 나이였고 주머니에 여유가 있던 시절이어서 가능했다. “제주에 있는 김정수 씨, 조치원의 이강수 씨, 구파발의 김종욱 씨, 부산에 문영택 씨... 전국 분재 거물들을 다 돌아다니며 만났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일본인에게 배운 분도 계셨는데, 그 집에 시간 날 때마다 들러 작품 가꾸기에 매진했죠.”
# 물주기 3년, 철사감기 3년...
분재를 취미로 하는 이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물주기 3년, 철사감기 3년’이란 말이 있다
. 그만큼 분재는 끈기가 필요한 취미이다. 묵은 순을 자르고 표피를 사포로 문질러 겉껍질을 벗겨 낸 후 철사걸이를 통해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가는 분재는 굵은 줄기부터 시작해 세부적인 잔가지까지 수백 번의 잔손질이 거듭 반복된다.
정성이 이만하니 가격도 일반 화분에 비해 고가인데, 15년 전 쯤 소장하던 분재들을 싹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 분재와 함께하자 작품을 보는 안목도 생겼다.
그가 소유한 것 중에는 골프선수 박세리 선수의 부친이 키우던 분재 작품도 있다.
박세리 선수의 아버지가 딸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오랜 출타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시들한 분재를 대전 분재원에 맡기게 됐단다.
# 열정을 심고 예술을 피우다
진로지도론 교수로 철학, 문학, 인문학을 두루 섭렵한 그가 분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 철학적이다.
“일반적인 나무는 직선으로 위에서 아래로 올라가지만 분재작품은 밑동이 퉁퉁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진적 축소감, 쫙 빨아올라가는 멋이 있어요. 이것도 단순 축소가 아닌 좌우, 앞뒤로 흔들리는 곡과 멋이 있습니다. 가지도 나무의 튀어나온 부분에서 나와야 하고, 가지의 간격도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죠. 이것은 미술에서 말하는 고전주의에 가까워요. 원근법, 소실점, 명암에 충실한 기본적인 멋스러움이죠.”
분재 기본의 아름다움이 고전주의에 가깝다면 바라만 봐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분재의 매력은 낭만주의와 닮아있다. 평범한 나무 분재도 다양한 자연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추상주의라고 설명한다.
김 씨는 우리네 삶이 매일 문명에 자신을 내맡기며 본연의 것을 상실하는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보며 내면의 음성을 듣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