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조기개방, 청기 들까? 백기 들까?
어쨌든 열쇠를 내 줄 수밖에 없는 농민의 입장에서 지금이라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개폐(開閉)의 양자택일이라는 극단적 측면이 주는 유리점을 한 톨이라도 긁어 모아보고자 하는 처절한 한풀이로 받아들여지는 문제일것이고 정부의 입장에서도 이에 맞서 조기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한 진실이 섣부른 논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국익 문제일것이기에 그 쑥덕거림은 기실 청기 백기 게임이상의 절실한 우리 쌀농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두려운 선택의 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농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재 지난 쌀 재협상 결과 의무수입량(MMA)을 늘려나가고 그중 일정부분을 시장에 내보내야 한다는 조건부로 관세화(전면개방)를 유예시켜 놓은 상태다.
관세화 유예는 WTO 국제 협상 취지상 준비기간을 부여 받았음을 의미한다. 그 유예기간은 내년이 아닌 2015년까지다. 유예 받은 10년이라는 기회는 쌀 경쟁력을 키워내야 하는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마지막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 개방을 반절로 싹 뚝 잘라 내년으로 앞당기려는 정부의 의도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농심의 저변을 이룬다.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쌀 개방 유예기간 10년의 중반을 맞는 현시점에서 우리 쌀 정책을 둘러싼 국제 여건이 2004년 쌀 협상 당시와 크게 달라져 국제 쌀값의 급등으로 관세화 하드래도 의무수입물량 이외의 추가수입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쌀 전면개방이 1년 늦춰질 때마다 의무수입량이 2만톤씩 늘어나므로 관세화를 앞당길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시장개방을 빨리 할수록 국익(國益)에 도움이 된다는 논지다. 따라서 지금 당장 시장을 전면 개방하드래도 외국쌀이 들어올 여지는 거의 없다는 애기다.
자, 우리는 이 상반된 양자택일의 현실 문제를 두고 청기를 들어 줄까? 백기를 들어 줄까? 아니면 시간을 더 가지고 고민하여 진정한 사회적 합의(合議)와 정책적 결단(決斷)의 소통적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두 깃발을 잠시 내려놓을 수는 없을까?
기실, 정부나 전문가그룹들의 공통적 견해와 같이 현재 국제 쌀 시장 여건에서 조기에 개방하는 것이 국내 쌀 소비에 대한 수입비율을 줄일 수 있어 수급조정에 따른 쌀 가격안정화와 재정운영에 도움을 주어 국익에 부합된다고 하는 주장에 필자는 공감하지만 깃발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그러한 주장의 논거(論據)는 최근 일시적인 국제쌀값 급등 요인에 두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으며 2001년도처럼 국제시장에서의 재고물량 급증으로 인한 쌀 가격 폭락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음은 숱한 과거사례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시급한 것은 청기나 백기를 들어주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은 보류하자. 그리고 쌀 조기개방문제에 대해 농민단체 등 이해 당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결단이 합일점(合一点)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지혜(智慧)와 역량을 결집하는 범국민적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대화 그리고 소통의 단절로 인한 범국민적 항거와 분노가 100일여동안 수백만의 촛불바다를 이루던 지난해 5월의 미국산 소고기수입 반대 국민항쟁은 다시는 재연되지 말아야 한다./ 나병훈 도교육청 농협 지점장(starion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