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태철 박사, 유배길에서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다.
/김태철 한국탄소융합기술원 공학박사
[투데이안] 3년 전 일이다. 직급은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직책이 사라졌다.
당혹스런 인사명령을 접하면서 필자는 한 분의 역사적인 인물이 떠올랐다. 그는 왕의 주변 힘 있는 인물의 악행을 보고했던 암행어사였다.
왕의 전폭적인 총애를 받고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실제 공사를 2년4개월 만에 완성한 인물. 조선 정조의 인재 정약용이다.
신유박해로 18년의 유배생활은 시작됐다. 실학을 통해 정조와 함께 조선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꿈은 산산조각 날아갔다.
필자도 사라진 그의 꿈을 따라 아픈 가슴을 안고 강진으로 향해보았다. 무작정 강진의 사의재와 만덕산 중턱의 다산초당, 그리고 백련사를 향해 떠났다. 정약용의 유배길에서 배신당하고 상처로 아픈 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시 노론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은 어떠했을까?
그의 고단한 마음들은 어떻게 정리하고 극복했을까? 고통 속에 그의 위대한 성과물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많이 궁금했다.
1801년 40세에 강진에 도착한 그의 심정이었다. ‘나그네의 근심을 녹여주는 단 한 가지는 섣달 전에 핀 동백뿐이라네’‘찾은 손님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아 이불도 더디 갠다오’‘맑은 날에도 탄식뿐인 것을’…
미래가 불안하고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고백한 그였다. 조선이 배척한 천주교신자, 마음 둘 곳 없는 그를, 주막집 할머니만 자신의 집에서 살도록 허락해 줬다.
‘시골아이들 글 쓰는 솜씨가 엉망인지 점획이 모두 삐뚤삐뚤 하구나’그의 뛰어난 학문실력은 어디서건 숨길 수 없었고 강진 아이들의 스승 역할을 통하여 마음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42세에 기거하는 주막집 공간을 ‘마땅히 네 가지를 한다’는 사의재로 고쳐달고 무너져버린 본인의 뜻과 학업을 바로 세우고자 다짐을 하게 된다.
유배지에서 아픔과 슬픔을 버리고 학문에 전진한 출발점을 만든 것이다. 44세의 봄 그는 혜장과의 만남을 통해 4년간의 주막생활을 떠나게 된다.
마침내 47세에는 외가친척 도움으로 지금의 다산초당에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서 생을 마쳤으면 좋겠다’ 하며 학문에만 전진 할 수 있는 환경에 기뻐한다.
‘뜻에 맞는 이 놀이가 내 분수에 넘치나 싶어 북쪽사람들을 향해서는 자랑하지 말아야지’‘봄이 깊은 울안에 여기 저기 꽃이 피었네’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이들과 함께 저술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곤궁한 지경에 이른 뒤에야 책을 저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보다 유배길로 더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 낸 전화위복 정약용이었다.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조개는 이물질이 몸으로 들어왔을 때 고통 속에서 이물질을 탄산칼슘으로 반복적으로 감싸고 또 감쌈으로 진주를 만든다고 한다.
조개는 반복된 고통을 통해 보석을 만드는 것이다. 이물질과 고통이 없었다면 보석 진주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의재 이후 그는 비관하지 않았고 결코 절망할 수 없었다. 학문으로 뜻과 방향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18명의 제자들과 함께 500권의 훌륭한 책들을 유배연구소를 통해 편찬하게 된 것이다. 유배지에서 만난 다산을 통해 얻은 교훈 첫째는 ‘고객 먼저’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있다는 당연한 말씀이다.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의 서비스 정신의 중요성이었다. 둘째는‘개선과 개혁’‘병들지 않는 분야가 없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강조한 점이다.
마지막으로‘실학사상’기계와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자는 조선후기 위대한 실학성자의 주장이다. 작금의 대한민국과 우리 각자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강진 유배지에서 그를 만나고 당혹스런 일터로 올라온 필자는 많은 변화를 가졌다. 박사수료한지 10여년이 지났다.
졸업논문은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진 것이다. 집중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창업분야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논문제목도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썼다.
또 하나는 한국앙트레프레너연구소를 만들어 기업가정신관련 연구회원들과 책을 쓰고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매주 1회 언택트로 함께 공부하고 있고, 작년 ‘도전하라 창직과 창업’이라는 제목으로 공저를 했다. 현재는 두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도 유배기간에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고통 중에 미래에 투자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세상이 필요로 할 근사한 진주 같은 존재를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