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

2011-01-31     투데이안

『평양성』: 역사를 핑계로 재치있게 펼친 경쾌한 히스토릭 픽션 마당놀이

조 현 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

‘가정무용론’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적용되어야 할 분야가 역사이겠지만, 신라의 삼국통일과정 만큼은 속없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바꿔보고 싶은 대목일 것이리라.

당나라라는 외세와의 연합이 아닌, 우리 민족 주도의 통일이었다면! 특히 드넓은 만주벌판 뒤로 광활한 영토의 주인이었던 고구려의 주도가 포함된 것이었다면!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결말이 현실이 되었고, 『평양성』은 바로 그 고구려의 심장부가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국민적 아쉬움을 세련되게 뒤트는 방식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도 유머와 해학의 방식으로 말이다. 엄정한 승부와 그 사이의 잔인한 과정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평양성』의 프로젝트는 그만큼 고난도의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런 미션을 수행함에 있어 우선 영화가 의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그 구어적 톤의 다양성과 리듬이다.

신라와 백제의 대립을 다뤘던 전작 『황산벌』에서 독특한 매력거리로 전시되었던 영호남의 각종 사투리 톤은, 이제 함경도와 평안도 사투리 억양의 합류를 받았고 여기에 야릇하게 비틀어진 중국어 액센트까지 가세하게 되었으니, 『평양성』의 말맛은 그만큼 풍요롭고도 경쾌한 음과 뜻의 향연을 자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란한 말들이 그 맛깔스러움을 더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말의 주인들이 구축해내는 독특한 개성 덕이기도 하다.

‘정진영’이 풍 맞은 교활한 늙은 ‘김유신’의 지혜를 하이톤의 경상도 억양으로 전하고,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의 강직함과 카리스마 혹은 타협성이 투박하게 구사되는 함경도 사투리로 전달되면서, 평양성의 함락과 그 후 전개될 전쟁양상을 둘러싸고 치열한 두되게임의 현장이 중계되는 사이, 『황산벌』에서의 ‘거시기’ ‘이문식’은 그 여전한 전라도 사투리로 민중의 순한 생명력을 전하면서 전쟁놀음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할 백성 개인의 권리를 외친다.

전쟁의 참혹함에 유머를 꽃 피우고자 하는 『평양성』의 의지는 전투 중 뮤지컬적 요소의 도입까지 감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초반 북쪽의 식량사정을 조롱하는 신라군의 퍼포먼스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튀어나온 병사들의 쌀밥 타령과 여유로운 율동으로 전개되고, 이에 대응하는 고구려의 창법 (창 쓰는 법이 아니고 노래하는 법이다!)도 만만치 않다.

30만 대군이라 하는 나당 연합군의 수를 합창의 방식으로 빼어가면서 벌이는 기싸움이 경쾌하면서도 비장하다.

그리하여 성문 대치라는 고대 전투의 상황을 영화적으로 기발하게 활용한 ‘코믹 뒤틀기’의 한 모범을, 『평양성』은 재치있게 보여주게 되었다.

허나 『평양성』은 욕심이 너무 많다. 고구려의 함락이라는 목표를 향한 신라의 욕망과 그 신라를 최종적으로 접수하려는 당의 야심이 미묘하게 부딪친다.

또한 자국을 지키기 위해 우직한 결사항전을 실행하는 연개소문의 작은아들과 당과의 타협을 모색하는 큰아들, 또 그와 경쟁하며 당을 요리해야 하는 김유신 등 평양성 공략을 둘러싼 각 세력들의 동상이몽이 만들어내는 어지러운 정략의 난무가 유연한 스토리라인의 전개에 부담을 안긴다.

여기에 또한 그러한 정략가들의 의도와는 독립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는 개인들의 처지와 소망도 전해야 하는 여유를 찾아야 했으니, 영화는 참으로 바쁘게 되었다.

웅장한 평양성의 세트, 대규모의 몹씬을 전개하면서 사실감 있게 진행되는 전투행위들, 그리고 역동감 넘치게 발사되는 각종 무기들, 이 모두는 평양성의 함락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온당히 목격되어야 할 물리적인 스팩터클을 실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장관을 가능케 할 구체적인 사건들의 진행은, 그 인과성과 개연성에 대한 부담에서 퍽이나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그저 그렇게 한꺼번에 종결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스토리 전개상의 클라이맥스는 잘 정리되어 있는 역사책의 대강의 내용에 맞추어 불현듯 찾아오게 되고, 영화는 그렇게 수습되고 만다.

그렇게 혀서 우리는 민족통일의 과업을 그나마 자주성 있게 이루어 냈당게.

헌디 그것은 본시 ‘거시기’같은 민중들의 구체적인 삶과는 별개인 윗대가리들의 놀음으로 진행된 것이었다고. 근디 사실 또 알고봉게 첩첩산중으로 피하여 평화롭게 지낼려 혔던 ‘거시기’내 집에서도 고부간 전쟁이 시작되었지 않았당가? ...

아니 근디 니들은 왜 영화가 다 끝나지도 않었는디 가버린다냐? (이 마지막 유머는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착석해 있는 얌전한 관객들에게만 랩쏭으로 제공되는 특별 써비스란다.) /조현철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