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
-우리사회 권력집단에 대한, 부당할 순 있으나 꼭 필요한 정면응시
조 현 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계속된 검거 실패로 대통령의 관심이 전달되고, 수사 중 실수로 유력 용의자가 사망하자 경찰청은 불온한 거래를 시작한다.
가짜 범인을 부각시켜 상황을 끝내는 것. 비 경찰대 출신으로 승진가도에서 번번이 벋어나 있던 광역수사대 정예요원 최형사에게 그 조작의 디테일을 깔끔히 수행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승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유착되어 있던 한 조폭의 리더를 통해 그 대국민상대 이벤트를 완수한다. 한편, 부동산 업계의 큰 손 김회장을 스폰서로 둔 주검사는, 그 스폰서를 구속시킨 최형사를 견제하기 위하여 사건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권력핵심으로부터의 주문을 세련되게 처리해야 하는 경찰, 그 임무의 수행을 위해 소비재로 선택되었으나 또한 그를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경찰로부터의 안전보험 기간을 무한으로 연장하려는 조폭, 한편 경찰의 직무수행으로 인하여 든든한 스폰싱 구조가 위협받게 된 검찰.
자 이제, 3각의 구조 속에서 더 어떤 추가적인 부당거래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영화는, 이 3개의 굵직한 이야기 기둥을 세운 후 이들 사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부당거래’의 내용만으로도 두툼한 이야기의 볼륨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정권핵심발 경찰청의 부담은 줄도 빽도 없는 하부조직원에게 맡겨지고, 그 임무의 행동적 실천은 조직폭력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조폭의 이익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경쟁자는 유력검사의 스폰서이게 되었으니, 이제 이 조폭은 경찰을 이용하여 경쟁자를 무력화 혹은 제거해야 한다.
그에 따라 경찰과 검사는 본의 아니게 서로 대립하게 되었고, 서로의 약점을 활용하여 각자의 스폰의 이익을 관철시켜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3각의 축을 잇는 이야기는 복잡하지만 잘 통합된 구성을 이루며 그 자체의 추진력으로 숨가쁘고도 밀도높게 전개되어 나가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한다. 여기에 두어 번의 반전의 기교를 효과적으로 덧붙이면서 2시간의 런닝타임을 꽉채우며 관객의 관심을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영화의 이러한 솜씨는, 『타짜』, 『추격자』,『마더』의 뒤를 이어 드물게 성취되는 우리 영화의 모범적인 드라마트루기의 사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당거래』의 야심은 단순한 흥미로운 이야기의 풍성한 전달에만 있지 않았다.
영화는 정권과 공권력의 온당치 않은 관계를 암시하기도 하고, 경찰조직 내의 부패와 분파주의 그리고 조폭에 준하는 폭력성을 드러냄에 있어서도 가감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찰의 부패가 어떻게 조폭의 이익 추구에 부합하는지, 또 그들은 이러한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업을 어떻게 확장해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중계한다.
또한 ‘대한민국 검찰’ 조직 풍경의 묘사에 있어서도 영화는 한 치의 양보가 없다.
검사는 기업인으로부터의 융숭하고 조건적인 스폰을 우아하고 엄숙하게 소비해내는 기교를 발휘하고, 부장검사는 상부의 지시에 의해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며 또한 수사 책무의 배당에 있어서도 고위직의 압력에 대해 기꺼이 민감해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 역시 상명하복의 질서를 유지함에 있어 조폭에 준하는 거친 비합리성을 감행한다.
우리사회 주요 권력집단에 대한 영화의 이러한 집중화된 시선은, 사실 인물과 상황에 대한 거리두기의 실천에 의해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연출은 풍성한 이야기의 발전 방향이 과잉과 극한으로 치닫는 쪽으로 설정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며, 각각의 상황의 전개에 있어 충실한 디테일의 부과로 현실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스크린이라는 켄버스에 작가가 채운 것은, 스스로 설정한 상황이 허락하는 현장의 상세한 묘사일 뿐이지, 작가의 무책임한 상상이나 낭만적인 기대 혹은 주관적인 저주로부터 비롯된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는 인물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배우들은 각자의 배역에 대한 동정이나 분노를 과도하게 유도해내지 않는다.
물론 그러면서도 각자가 해석해낸 그들의 캐릭터의 입체화에 있어서는 충실성에서의 양보가 없다.
특히 주검사역을 맡은 ‘류승범’은 때론 은근하고 때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탐욕과 불리한 상황 속에 노출됨에 따른 비굴, 그리고 대한민국 검사로서 과시하는 당당함 등 복합적인 태도를 능청맞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최형사역의 ‘황정민’은 공식적 권력조직의 말단에서 상승해보려는 욕망과 모든 것을 거칠고 강력한 폭력으로 다루어보고자 하는 마초근성, 그리고 완패를 모면하고자 다시 온몸으로 (이번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비굴함 등을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여기에 수완 좋은 조폭을 열연하는 ‘유해진’은 예의 그 특유의 빠르고도 투박한 말투로 처절하면서도 민첩한 ‘비즈니스 마인드의 불온버전’을 표현함에 있어 극도의 효율성을 발휘한다.
이야기와 연출 및 연기 등 영화 만들기의 핵심 요소에서 에이스 카드를 쥔 『부당거래』는, 결국 우리사회의 핵심권력기관에 대한 ‘엄격한 지켜보기’의 임무를 적절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당거래의 3축 중, 그래도 온전히 남는 것은 가장 상층의 권력이고, 영화는 말미에 “젊은 사람이 살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로 의연히 견디다가, 적당한 때에 주어지게 될 마약사건을 계기로 재기해보라”는 장인의 격려를 받는 우리의 스폰서검사를 부각시키고 있다.
‘검사 스폰서 사건’, ‘그렌저 검사 사건’, ‘총리실 국민 사찰에 대한 부실수사 논란’ 등 아직도 우리에게 남은 현실에서의 ‘부당거래들’이, 보다 더 집중적이고도 냉정한 국민의 시선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지적하며 마침표를 찍고 있는 것이다. 매우 온당하게 말이다!/투데이안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