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들을 내 보내야 쌀이 산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역시 농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언필칭 100여 일 동안 여든 번 이상의 소박한 농부의 땀과 손길로 어루만져졌을 알찬 결실이기에 풍작을 감사하며 가슴 벅차야 할 우리의 들녘을 바라보는 눈길들이 근심으로 가득할 뿐이다. 이는 쌀 재고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바는 전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과거 실패한 양정사례가 말해주듯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재고 쌀 처리문제에 대해 정부가 우왕좌왕하며 세월만 놓치다가 수확기가 시작되어서야 여론에 떠밀리듯 설레발레 치며 내놓은 59만여 톤이나 되는 식용으로 불가능한 묵은 쌀 재고처리대책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말도 많았던 동물사료와 주정용으로 처분한다는 계획이어서 과연 이것이 국민적 신뢰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년도와 같은 섣부른 예측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부의 판단대로라면 올 양곡연도 말(10월말) 예상되는 재고량은 149만 톤으로써 초유의 쌀값대란이란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게 뻔하다. 이는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서 권고하는 적정재고(72만톤)의 두 배를 넘기는 역대 최고치다. 정부는 최근 그러한 과잉재고 쌀 처리계획을 제시했다. 그 핵심은 밥쌀이나 주정용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2005년-2007년산 묵은쌀 (32만톤)은 대부분 동물 사료용으로 당장 공매를 통해 이달 중 긴급처분하고 2008년산 (27만톤)은 내년에 주정용으로 처분계획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선 최소한의 과잉재고를 털어내게 되어 올 수확기 적정재고수준 유지는 물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정부양곡창고 공간도 확보하게 되어 순조로운 수매가 진행 될 것이기 때문에 현하의 산지에서의 불안심리가 해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현재의 재고 쌀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전술한 바와 같이 사료화를 무조건 반대하고 있을 만큼 녹록한 상황은 아니나 100만톤 이상의 식량부족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에 대해 2008년 이후 중단된 인도적 차원의 쌀 지원재개 등을 이슈로 정치권과 농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는 마당에 32만톤이 넘는 대량의 묵은 쌀이 수확기가 이미 도래해 버린 이번 달 중에 전량 동물 사료용으로 시장에 팔려나갈 수 있을까?
또한 대통령까지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쌀 막걸리 홍보대사를 자임하고 있으나 진즉 걸림돌이 되고 있는 관련 법제도하나 제대로 손대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미약한 쌀 주류가공 사업체계 현실에서 내년도로 이월시켜 검토단계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인 2008년산 27만여 톤 전량을 주류가공업체들은 애국심을 가지고 흔쾌히 구매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희망사항 일 뿐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골치 아픈 쌀 과잉재고에 따른 쌀값폭락문제에 대한 해법은 궁극적으로 생산조정제 등 장기적 관점에서 풀어 가야 할 구조적인 문제다. 따라서 향후 한두 달 이내에 59만톤 이상의 재고미를 처분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정부안은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음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일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지금 시급한 것은 2005-2008년산 재고미를 전량 털어내는 것이다. 벼와 보리로 빼곡히 쌓여있는 양곡창고의 재고미를 털어내지 않고는 코앞에 닥친 수확기 공공비축용 벼(47만2,000톤) 매입 작업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급을 다투는 과잉재고처리 방안으로 검토될 수 있는 대안은 우선 식용이나 주정용으로 쓸 수 없는 2005년-2006년산 (26만톤)은 사료화로 추진하고 2007년산(5만톤)은 전량 주정용으로 처분한 뒤 품질은 다소 떨어지나 식용이 가능한 2008년산(27만톤)을 대북지원 물량으로 과감하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천안함 사태 등으로 경직된 대북관계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2008년이후 중단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심도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실현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하겠다.
이처럼 27만톤 정도의 물량을 창고에서 조기 방출시켜 금년 산 추곡수매 여석을 우선 확보하여 대비하고 나머지 식용이 불가능한 2005-2007년산 묵은쌀 32만톤은 전술한바와 단기간 내에 전량 해소가 어려움으로 정부의 적극적 예산지원 시스템을 가동하여 사료화 및 주정용으로 공매를 진행시켜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어차피 이 물량은 바다에 쳐 박지 않는 한 사료화나 주정용 이외에는 어떠한 형태로 소진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시장에서 격리시켜 처리대책을 강구해 나가되 금년도 신곡 창고보관여석 확보를 위해 농기계창고전용이나 개인창고 임대형식 등을 통해 별도 보관하는 후속처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재계(27만톤)와 묶은 쌀 전량의 안정적 사료화 추진(27만톤), 주정용(5만톤)등 59만톤 정도가 시장 격리되어 처리된다면 금년 양곡재고는 2009년산 잔여물량(42만톤)과 금년도 공공비축수매물량(47만톤)을 합하여 89만여 톤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어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서 권고하는 적정재고(72만톤) 수준과의 격차를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북지원 재개의 명분만을 찾으려고 고민할 때가 아니다. 시간이 없다. 이번달말부터 금년도 신곡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나 양곡창고는 빼곡히 구곡들로 들어 차 있다. 59만 톤의 썩어버린 재고미 , 연간 1,770억 원의 국고(창고비용)를 축내고 있는 그 녀석들을 과감하게 밖으로 내 보내야 쌀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