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여섯 번의 반복, 점증하는 써스펜스 속 미묘하게 드러나는 반전 의식
'허트 로커 (hurt locker)'란 헤어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처해있는 상황을 뜻하는 미국의 은어라 한다. 피해를 입은 상태 (hurt)가 단단하게 잠겨진 상황 (locker)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러한 비참한 상태에 갇혀있다는 것은 어떤 경우를 말하는 것일까?
『허트 로커』의 배경은 이라크 전이 한창이던 바그다드 시내이다. 아마도 ‘허트 로커’는 전쟁 상황 자체에 대한, 혹은 바그다드 시내에서 특정한 임무를 맡고 있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처지에 대한 은유일 것이리라.
그들의 임무란 다름 아닌 도처에 숨어있는 사제 폭발물을 발견 처치하는 일이다.
이라크 전 당시 미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던 것이 바로 이 사제 폭탄이었다 하는데,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곳에든 있을 수 있고 때로는 평범하고 순박해 보이는 민간인 중 누구라도 급작스레 달려오는 사람의 몸에 부착되어질 수 있는 폭발물을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몸을 맡긴 경우여서, 이러한 상황 설정이 주는 긴박감은 대단한 것이 되었다.
더구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앞에서, 그 뇌관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제거해야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입장에 서기 마련인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한 결 같이 유지되고 있다.
영화는 이러한 긴장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주의적 접근을 택하고 있어, 마치 전쟁 상황의 한 가운데 있는 인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러한 현장감의 구현이 가능했던 것은, 상황 자체가 주는 써스펜스적 요소 이외에도 여러 대의 핸드 핼드 카메라로 설정된 장면을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촬영 기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거친 입자의 화면 속에서, 역동적으로 다가가는 카메라가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포함한 피사체들을 잦은 클로즈업과 원경을 교체 사용하며 부각시키는 사이, 전쟁의 현장감과 순간순간 목숨을 운명에 맡겨야 하는 대원들의 공포감이 보는 이의 피부에 스며들게 된다.
따라서 여타의 전쟁영화들과는 달리, 화려한 액션의 전시를 통한 관음적 쾌감을 쥐어짜내려 하는 것처럼 전쟁상황의 뻔뻔스런 상업적 활용을 시도한다든가, 혹은 전쟁이 일으키는 비인간적이고도 비극적인 결과의 묘사를 통하여 반전을 외치는 메시지 과잉의 사례로 남기를 『허트 로커』는 거부하고 있다.
그저 일촉직발의 처지에 놓인 개인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하여,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써스펜스물에 영화는 더 가까이 위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의 연속화는 폭발물 제거라는 동일한 상황을 6번씩 반복하면서 점증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터지고야 마는 폭탄의 세례를 받고 팀장이 희생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이 맡은 임무의 치명적 특성이 첫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제시된 후, 새로 부임한 팀장의 모험주의적이고 도전적인 탐색과 뇌관 제거의 과정이 반복된다.
이 주인공이 다루어야 하는 대상은 단수의 뇌관, 복수의 뇌관 네트워크, 죽은 아동의 몸 속에 내장된 뇌관, 급기야는 살아 있는 사람의 전신을 휘감은 시한 폭탄의 뇌관 순으로 정교하게 배치되어,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갈수록 높은 수위로 자극하고 있다.
관객들이 동일한 상황에 부딪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상황의 배치가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허트 로커』가 단순한 스릴러 물로만 남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는 미국이 주도한 이 터무니 없고도 복잡한 전쟁에 관련된 그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직접 건드리지는 않는다.
다만 폭발물 제거라는 상황이 대표하는 전쟁 일반의 속성을 실감나게 부각시켜, 그 한 가운데 위치한 개인들의 긴장과 공포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전쟁의 무모함과 비극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전쟁 상황이 제공하는 이 위험한 놀이에 스스로 중독되어가는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을 제시함으로써, 『허트 로커』는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련된 반전영화의 성격을 가지게 까지 되었다.
상업적 관행에 대하여 비타협적인, 여성 감독이 만든 저예산의 이 영화가 세계적인 흥행과 빛나는 테크놀로지의 과시로 무장한 대작 『아바타』를 누르고 금년도 미국 아카데미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바로 『허트 로커』의 이러한 독특한 장점이 민감히 받아들여진 결과이리라. 조 현 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