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

2010-02-24     엄범희 기자
[투데이안객원논설위원]-남북대치라는 딱딱한 외피 속에 유머와 감동의 속살을 채워넣은 스마트 버디무비


여기 대공 작전의 공을 독차지 하려다 일을 망치고 불신 받다가, 남북간 긴장완화의 여파로 국정원으로부터 구조조정 당한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는 배워먹은 기술을 시대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달아난 동남아 신부들을 추적 포획하여 국제결혼한 남편과 가정에 배달해주는 사업으로 먹고 살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수사관 시절 쫒고 있던 남파간첩이 나타나게 되고, 그는 간첩단을 잡아 더 큰 포상금을 얻고자 이 젊은 간첩에게 나름 파격적인 조건으로 동업을 제의한다.

이에 자신의 정체를 모를 것으로 짐작하는 그 간첩은 배신한 동료를 추적코자 그리고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위장 사업으로 보여지는 그의 사업 제의를 받아들인다.

『의형제』는 기본적으로 버디무비이다. 선명하게 부각되는 두 남성의 기구한 사연이 서로가 동행 및 동거해야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사이, 둘은 서로를 관찰하고 의심하며 최종적으로 이용하려 하다가, 결국은 이해하고 구원하는 형재애를 구축하게 된다.

범생이 감동드라마의 얼개를 취하는 것 처럼보이는 영화는, 그러나 잘 빚어진 감동과 재미의 결합체로서 스크린 시장의 만만찮은 주자로 우뚝 서고 있다.

영화는 초반 역동적인 액션장면의 연속으로 관객의 주의를 확보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대도시의 서민 아파트와 재개발 지역 그리고 평범한 대로변을 무대로 간첩단의 살육행각과 그들을 쫓는 수사대원들의 분주한 행동을 묘사하는 씨퀀스들은, 우리의 일상적 현장 속에 유별난 사건의 사실감 넘치는 재현을 이루는 데 손색이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영화 중반 두 인물의 행동을 전개시키는 데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각자가 자신의 정체를 모를 것으로 인식되는 상대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사이, 적지 않은 긴장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공들여 설계되고 성실히 연기되는 두 인물의 성격이 가미되어, 영화는 매우 강력한 유머파우어를 획득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속물정신을 유일한 이념으로 삼으면서 좌절과 분노, 탐욕의 실현을 위한 인내 그리고 자승자박의 어리석음을 연발하는 우리의 소시민 ‘이한규’의 캐릭터를 무척도 자연스럽게 표출해내는 ‘송강호’의 표정과 억양이 순발력 있고 상황반영적인 대사와 결합되었을 때, 관객은 낄낄대면서도 그 속에서 언급될 수 밖에 없는 자신 혹은 그가 속한 사회의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추석날 차례상 앞에서 “이북에서도 제사지내냐?”는 이한규의 결정적 맨트로 ‘위장 속 상호 이용’이라는 두 인물간 대칭적 관계가 한 순간에 무너진 후, 영화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종반의 클라이맥스를 향한 관습적인 질주를 감행하게 되고, 또 그만큼 인위적인 정리를 수행한다.

그리하여 초반에 선보였던 액션의 역동이 다시 한번 시도되는데, 안타깝게도 이 대목에서 영화는 감각적인 역동성과 깔끔한 플롯의 전개를 위해 상황의 개연성이 과감히 희생되는 결과를 감수하고 만다.

그에 따라 악당은 거의 불사조의 괘력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고, 그 급박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신통하게도 마지막에는 핵심적인 등장인물들만 정확하게 조우하여, 서로의 오해 확인과 애정이 교환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리하여 제목에서 일찌감치 선언된 ‘의형제’는 반드시 실현되고야 만다. 무척도 영화적으로!

물론 『의형제』는 세련되게 빚어진 대중상품이다. 그런데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이 영화가 채택한 전략은 매우 영리하다. 전세계적으로 유일하다는 한반도만의 분단상황을 소재로 하고 국제결혼의 그늘을 다룸으로써, 그 희소성과 시의성을 동시에 살리고 있다.

남북한간의 대치라는 정치 현실이 이땅에서만 있을 수 있는 긴박한 사건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사이, 한편으로는 농촌사회의 상대적인 피폐, 베트남 신부의 인권 문제, 아파트로 상징되는 우리사회의 물질추구 경향 등이 자연스레 건드려지고 있다.

물론 이와 함께 이념과 이해관계를 한참이나 초월하는 인간애의 발전과정을 중계함으로써, 관객들의 정서적인 몰입을 지휘하는 역할도 영화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

『쉬리』,『공동경비구역 JSA』,『이중간첩』,『간첩 리철진』 등 분단현실을 소재로 한 우리 영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대결적 버디에서 『오! 브라더스』의 애정적 버디로 전환하는 『의형제』는 한국적 소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 버디무비의 사례로 오래 남게 될 것 같다./조 현 철 군산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