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음악이고 그저 판소리가 좋아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음악이 대중음악에 밀려 소외받고 있고 후배들의 설자리가 부족해 너무 아쉽습니다.” 무려 11차례나 되는 수술대에 오르고도 판소리와의 끈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전북 지방무형문화제 오정(梧亭) 조소녀 명창(65).

조소녀 명창은, 늦은 나이에 소리를 배워, 역경 속에서 명창반열에 오른 판소리계 신화창조의 주인공이다. 조소녀 명창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고, 지방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오뚜기 같은 삶이었다.

조소녀 명창이 판소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서울에서 박초월 명창에게 단가 몇 자리와 춘향가의 사랑가를 배우면서부터다.

조소녀 명창은 29세 되던 1969년 전주로 내려와 동리대상 수상자인 홍정택 선생으로부터 춘향가와 심청가 도막소리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판소리 공부에 들어갔다. 29세 늦은 나이에 만회라도 하 듯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며 가슴 속 담긴 애환을 소리에 품어냈다.

조소녀 명창은 소리에서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는 듯 했다. 하지만 밤낮가리지 않고 강도 높은 훈련이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소리꾼에게는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성대가 결절되는 불운이 밀려왔다. 한창 소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그녀에게서의 성대 결절은 소리인생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소리꾼에겐 생명보다 소중한 성대를 수술해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소리를 표현 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조 명창의 소리 인생이 끝났다고 했다.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조명창의 시대는 지나갔고, 그의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그는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와 멀어졌다. 처음 어렵게 시작한 것처럼 그렇게 소리와의 인연이 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조소녀 명창의 가슴속에 면면히 흐르는 판소리의 애정을 식힐 수는 없었다. 그녀는 35,6세 무렵에 다시 판소리공부를 시작하기로 맘먹었다.

오정숙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백일공부를 해가며 춘향가를 배웠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성대가 다시 도졌고, 판소리학습은 다시 중단되는 난관에 부딪혔다. 성대와의 싸움은 주기적으로 계속됐고, 11차례나 되는 대 수술로 이어졌다.

조소녀 명창의 소리인생은 자신과의 싸움보다는 성대와의 싸움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수술한 목을 쉬이고, 길들이고, 그러다 다시 목이 상하고 하는 과정 속에서도, 끈질기게 명창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갔다.

어쩌면, 초인적이고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녀의 비상한 노력으로, 인위적인 수술의 상처를 잘 길들여갔다. 조소녀 명창은, 성대로 인해 제때 하지 못한 공부를 오정숙 명창의 제자인 이일주 명창에게서 다시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소리이외에 자존심 따윈 없었다.

조소녀 명창의 판소리 인생은 점차 늘어나는 제자들로 부활됐다. 소리와의 인연은 짧았지만 제자를 길러내는 활동으로 소리를 놓지 않은 것이 또 다른 인연이었다. 조소녀 명창은 98년까지 고창에 강사로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고 당시 수강생들은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많았지만, 언제나 조 명창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수강생 가운데 어린 학생들은 판소리를 열심히 가르쳐 대학에 진학시킨 일도 많았다. 이 가운데에는 유일한 혈육인 조희정(딸)씨도 있다. 조소녀 명창의 판소리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애원성(哀怨聲, 함경도 민요)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다.

전주예고와 전북대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전북대 음악대학원 재학중인 조희정씨는 선율에 이어 소리 매력에 흠뻑 젖어있다. 주변에서는 조희정씨를 판소리계에 큰 별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판소리가 물이나 모래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며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조소녀 명창은 이런 후학들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완산전국국악대제전을 12년째 열고 있다. 지난 9일과 10일은 조소녀 명창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완산국악제전진흥회가 주최하는 ‘제12회 완산전국 국악대제전’이 전주 덕진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조소녀 명창이 역경을 이겨내고 외길을 걸으면서도 완산전국국악대제전 만큼은 가장 애지중지하고 있다. 조소녀 명창은 “완산전국국악대제전을 이어오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조소녀 명창은 판소리 명문가다. 조영자(2관왕-민요, 판소리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제주도 한라문화제 민요 대통령상), 조용안(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조용수(전국고수대회), 조용복(전국고수대회). 이세정(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 대통령상) 조희정(26)(신라문화제, 장흥전통가무악 전국제전 장관상) 등을 배출했다./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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